44. 다시 짐바란 포구의 아침과 저녁
아침 잠이 없어지는 것은 나이가 들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아침 잠이 많은 편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예전만큼은 아니게 되었다.
예전에는 정말 아침 잠이 많았다. 내가 군입대를 할 때 어머니가 하신 가장 큰 걱정도 나의 아침잠이었다.
“너 그러다 매일 아침 여섯시에 어떻게 일어날래?“
어린 시절 나의 달콤한 아침 잠을 깨우는 사람은 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서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고 난 후에는 나를 깨우곤 하셨다.
특히 밤 사이에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내린 겨울 아침에는 반드시 나를 깨웠다.
“일어나라. 기준이는 벌써 일어나서 집앞을 쓸고 있더라.”
그런 날은 으례 사전 예고 없이 별안간 방문을 활짝 열어 제꼈다.
나는 느닷없이 밀려들어오는 찬바람에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려 이불을 칭칭 감고 구석으로 피해가며
“기준이 이 자식을 이따가 만나면 반 죽여놔야지”하는 다짐을 하곤 했다.
기준이는 한동네에 사는 동갑내기 내 친구였다. 막상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하얗게 변한 세상이
마치 내 것인 양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하루 종일 동네 안팎을 쏘다녔지만 일어나는 그 순간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몸서리치게 싫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잠자는 사람은
절대 깨우지 말아야지 하는 시덥지 않은 결심을 너무 확고히 하였던 모양이다.
숱한 어린 시절의 희망과 다짐 가운데 오직 이 결심 하나만을 아직 ‘확고히‘ 지키고 사는 ‘시덥지’ 않은
중년이 된 걸 보니 말이다. 휴일이나 여행에서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나는 가족 누구의 아침잠도 방해하지 않는다.
* 짐바란 포구의 아침
아내는 나하고는 반대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침잠이 많아지는 것 같다.
신혼 초 아내는 늘 나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차려놓고 나를 깨웠다.
그런 아내가 언제부터인가 나와 함께 놀라서 일어나더니 이제는 내가 깨워야 일어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나마도 아내는 나의 아침을 위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딸아이의 아침을 위해 일어난다고 해야 한다.
딸아이가 방학에 들어가면 나는 식구들이 잠에서 깰까 조용히 문을 닫고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내의 ‘한 성깔’에 눌려서가 아니라 내 어린 날 스스로의 결심 때문이라고
내가 우긴다면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라나?
짐바란의 아침을 보기 위해서 곤한 잠에 빠져있는 아내를 흔들어야 했다.
아침 포구의 싱싱함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짐바란으로 가는 길은 택시를 이용했다. 그
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아내의 체력을 고려해서였다. 포구에는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내 역시 그런 소담스러운 생활의 모습을 좋아했다. 우리는 훈훈한 마음으로 사람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매일 아침 이런 장이서냐고 물으니 누군가 아침뿐만이 아니라 저녁에도 장이 선다고 말해주었다.
*위 사진 : 숙소인 인터콘티넨탈에서 본 노을
그래서 저녁 무렵 수평선이 붉게 물들기 전 우리는 해변으로 나가 다시 한번 더 포구를 향했다.
이번엔 걸어가기로 했다. 황홀하지 않은 일몰이 어디 있으랴. 붉게 물들어가는 짐바란의 노을이 아름다웠다.
아내와 함께 해변을 걸으며 나는 우리 인생의 황혼도 노을처럼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빌어보았다.
해산물을 굽는 연기가 야자나무 사이로 번지는 카페촌을 지나며 우리는 해변가에 나온 리어카장사에게서
버터를 발라 구운 옥수수를 샀다. 옥수수를 파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순박하여 정감이 갔다.
그 때문에 찐 땅콩 한 봉지를 더 샀다.
* 짐바란 포구의 저녁
저녁의 포구도 아침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포구로 돌아오는 배보다 야간작업을 위해 수평선으로 출항하는 배들이 더 많았다.
출항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두툼한 옷을 걸쳤다. 바다 가운데서의 밤은 그들에게 추운 모양이다.
번잡한 사람들 틈에서 물고기를 구워먹던 청년들은 내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월드컵.”
“꼬레아팀 바구스(잘했다)!”
“미스타 한! 바구스 스깔리!(한이 매우 잘했다).” 를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미스터 한?...... 누구지?”
아내와 나는 잠시 의아해 했지만 이내 그것이 안정환 선수를 의미함을 알아차렸다.
“아! 안정환!”
우리가 아는 척을 하자 그들은 합창으로 외쳤다.
“야아! 안충환!”
우리의 6월.
그 신명나는 시간을 우리가 직접 지나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뿌듯하게 느껴졌다.
* 이 날은 아침 짐바란 포구 산책에서 돌아와 다시 저녁 산책을 나갈 때까지 호텔 수영장에서 보냈다.
저녁 산책에서 돌아올 때 판씨 PANSEA 호텔에 속한 늘라얀 NELAYAN식당에서 분위기 있고
만족스런 식사를 했다고 기억하는데, 사진과 글이 옮기는 과정에서 어찌된 일인지 망실 되었다.
아래와 같은 늘라얀식당과 음식 사진 각 2장씩만 남아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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