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내항 가까이 있는 장미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가 남긴 일군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장미동의 장미는 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쌀 곳간'을 의미하는 장미(藏米)다.
유형의 유적과 함께 무형의 이름에조차 고통스런 그 시절의 잔재는 여전히 완강한가 보다.
↑ 1908년에 준공된 옛 군산세관 건물이다. 붉은 벽돌은 벨기에에서 수입을 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건축학적인 의미 외에,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에서 쌀 등을 빼앗아 가던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서 역사적 교훈을 주는 곳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 장미갤러리는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쌀을 보관했던 창고였다.
2012년에 다목적 공연장으로 개보수 되었다.
↑ 미즈커피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운영하던 무역회사 미즈상사의 건물이다.
식료품과 잡화를 수입했다고 한다. 일층은 보통의 커피숖이나 나무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가면 깔끔한 다다미방이 있고 작은 책장도 있다.
↑ 지금은 예술전시공간으로 사용되는 장미갤러리는 일제 강점기부터 있어온 건물이긴하나
어떤 용도로 사용했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 근대미술관은 옛 일본계 은행 건물이었다.
은행 이름이 특이하게 18은행이다. 18은 은행 설립인가 순서를 뜻한다고 한다.
↑ 근대건축관은 1922년에 지어진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이다.
근대건축관 맞은편 해망로 도로변에 검은색의 작은 비가 서 있다. 마두장비 가까이 전국구 명성을 지닌 이성당 본점이 있다.
미두장(米豆場)비이다. 옛날 이곳에 미두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비이다.
미두장이란 주식을 사고파는 오늘의 증권 시장처럼 쌀을 현물이 아닌 쌀표로써 사고팔던 곳을 말한다.
공인된 노름판인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나 조직력이 일본인에 견주어 턱없이 모자랐던 한국인들은
그들의 조작과 농간에 휘말려 가진 돈을 죄다 털리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정주사는 선비집 자손으로 13년 동안 군청 서기로 일한 끝에 퇴직한 후
선산과 논, 집을 팔아 고향 서천을 떠나 군산으로 온다. 이곳에서 그는 미두(米豆)꾼으로 나섰다가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거렁뱅이나 다름 없는 하마꾼으로 전락한다.
하마꾼은 미두로 전 재산을 탕진한 후 미두장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을 말한다.
정주사는 1930년 중후반 식민 조선의 암담한 상황을 증거하는 인물이 되겠다.
『탁류』에서는 미두장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미두장은 군산의 심장이요, 전주통이니 본정통이니 해안통이니 하는 폭넓은 길들은 대동맥이다.
이 대동맥 군데군데는 심장 가까이 여러 운행들이 서로 호응하듯 옹위하고 있고, 시장 바로 전후
좌우에는 중매점들이 전화줄로 거미줄을 쳐 놓고 앉아 있다.
아내가 유명한 야채빵과 팥빵 한 개씩만 먹어보고 가자고 하여 들어갔다.
유독 두 가지 빵이 있는 곳에만 줄이 길었다.
하지만 아내와 나에게 이 두가지 빵의 맛은 별로였다. 특히 야채빵은 (이 날만 그런 것인지?) 짠 맛이 강했다.
오히려 (얼마 전 서울 잠실 롯데 이성당분점에서 먹었던) 다른 종류의 빵이 더 좋았다.
얼마 전 아내가 갑자기 소바가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먹고싶은 것은 바로 먹어야한다는 나의 지론으로 집 근처 일식집에서 먹어봤지만 맛이 별로였다.
대정소바는 우연히 알게되어 가보게 되었다.
계절이 가을이라 찬물에 말아먹는 방식이 썩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는 대정소바의 맛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아줌마에게 경암동에 있는 철길마을 가는 방법을 물었다.
아줌마는 버스편을 자세히 설명해 주신 후 말했다.
"거게 뭐 볼 게 있나유?"
서울사람 남산 잘 안 가고, 한감유람선 잘 안 타는 것과 같은 식인가 보다.
경암동 철길마을에 철길은 있지만 기차는 이제 다니지 않는다.
철길 양쪽으로 바투어 지어진 집들은 여전히 생활의 공간이었고
몇몇은 우리 같은 방문객을 겨냥한 기념품점을 열어놓기도 했다.
큰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10여분 정도의 철길을 따라 걷는 것이 나쁘진 않았다.
짜릿한 흥분과 감동만이 있는 여행은 쉽지 않거니와 너무 피곤할 수도 있으리라.
삶도 여행도 사이사이 무의미하고 무료한 여백의 시간이 필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걸까? 어린 학생 셋이서 어깨동무를 하고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철길 주변의 쇄락한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누군가 군산의 중동호떡이 이성당만큼 유명하다고 했다. 철길마을에서 걸어서 갔다. 10여분 정도 걸렸다.
원래 가게인 듯한 위 사진 속 가게는 문을 닫았고 지금의 가게는 바로 맞은 편에 번듯한 건물 속에 있었다.
호떡을 만들어 세운 건물이 아닐까 짐작을 하니 대단해 보였다.
최근엔 분점도 냈다고 한다. 중동호떡은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구워낸다.
단맛이 강해 나로서는 한번에 하나 이상을 먹기가 힘들었다.
중동호떡에서 고속버스터미널은 다시 10여 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역시 걸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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