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을 낀 3일의 연휴 첫날, 산행을 하기로 했다.
지난 일년 간 몇 차례 산행을 했지만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은 없었다.
오래간만에 뼈와 근육 사이에 낀 일상의 찌꺼기를 털어내보자는 생각에
급하게 산악회에 연락을 하여 소백산 행을 예약했다.
아침 일찍부터 고속도로는 몰려든 차들로 여기저기서 막히고 있었다.
휴게소도 만원이었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힘들게 빠져나와
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비로소 차는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지만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반이 늦어서야 산행 기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행은 비로사 아래 삼가리에서 시작하여 소백상 최고봉인 비로봉 - 제1연화봉 -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걸어 희방사로 하산하는 경로를 잡았다.
비로사를 지나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자주 철쭉 무더기가 나타났다.
연록의 숲과 자극적이지 않은 연분홍 철쭉이 만들어내는
늦은 봄의 정취는 가파른 경사길을 가볍게 해주었다.
숲길에서 벗어나면서 비로봉 정상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 표지석 앞에는 증빙(증명?)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내 발걸음으로 이루어낸 작은 성취가 주는 뿌듯함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들이겠다.
비로봉에서 이어지는 능선길의 끝은 아득히 멀었다.
이정표가 되는 천문대가 (위 사진에서처럼) 작은 막대기로 보였다.
연화봉에서 희방사 쪽으로 하산을 할 것이니 천문대 언저리까지는 어차피 가야할 길이었다.
생전의 어머니는 뭔가 해야할 일을 앞둔 어린 내게 종종
"게으른 것은 눈과 마음이고 부지런한 것은 손과 발"이라고 말씀하셨다.
논과 밭의 고단한 노동을 이겨내신 당신의 지혜이고 다짐이었으리라.
나는 그 말을 산행길에서 떠올리곤 한다.
'그렇겠지요 어머니. 눈에 보이는 것처럼 저길도 마냥 먼 것은 아닐 겁니다.'
간편식으로 배를 채우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섰다.
먼 산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천상병의 시, 「먼 산」중에서 -
소백산의 능선은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를 가르는 경계다.
흙산이 주는 푸근함이 완만한 곡선길에 깔려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바람도 적당했다.
희방사는 역사가 6-7 세기까지 거슬러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에 재건되어 옛스런 맛은 없는 절이었다.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연등이 화사했다.
절 아래 희방폭포도 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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