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호남선이 생기면서 광주가 매우 가까워졌다.
덕분에 하루만으로도 광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평소 그렇게 친숙하지만은 않던 속도의 문명이 주는 편리함이 이럴 땐 달콤하다.
첫 방문지는 며칠 전 문을 연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었다.
금남로의 옛 카톨릭센터를 개조하여 1∼3층을 전시실로 만들었다.
전시실에는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의 항쟁과 관련된 사진과 영상, 기록, 성명서,
공문서, 물품, 기자들의 취재수첩, 일기, 형상물, 재판기록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위 사진 : 80년 5월 계엄군의 총탄이 뚫고지나간 당시 광주은행 본점의 유리창.
*위 사진 :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 김준태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계엄당국의 검열로 대부분이 잘려나가 작품 전체 130행 중 겨우 35행만 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예술의 거리에 있는 민들레소극장에서 '오월광주'의 상처와 치유를
심리극의 형태로 이야기한 극단 토박이의 「모란꽃」을 관람했다.
우리는 종종 전쟁 도발자인 일본의 야만과 사과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뻔뻔함에 분노한다.
그리고 잘못된 역사에 분명한 반성과 사과를 한 독일 정치인들의 태도를 들어 일본을 더욱 질타한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들이대는 독일발 잣대를 우리 사회로 동일하게 옮겨와도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닐까?
아니 당연히 옮겨와야하는 것 아닐까?
"나치 만행을 되새겨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항구적 책임."
"독일 국민도 나치의 등장에 책임이 있다."
“우리 모두는 죄가 있든 없든, 젊었든 늙었든, 과거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
“독일인들은 꾸밈과 왜곡 없이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고는 화해도 있을 수 없다.”
“과거에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도 볼 수 없다.”
연극이 끝나니 오후 늦은 시각.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기아타이거즈의 홈구장인 챔피언스필드를 찾아보았다.
사위는 두산베어즈, 딸아이와 우리 부부는 타이거즈팬이다.
결과는 두산베어즈의 승리.
아내는 숫적 열세인 사위를 위해 다음부턴 베어즈로 응원팀을 바꾸겠다고 한다.
이래서 사위사랑은 장모겠지만,
글쎄.....응원을 한다는 것은 정서적인 일치를 뜻하는 것인데 말처럼 쉽게 바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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