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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57 - 신동엽의「산문시」

by 장돌뱅이. 2017. 1. 8.


세월호.

한 유가족이 세월호가 침몰한지 1000일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겐 1000번째 4월16일이 지나는 것이라고 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라는 신영복선생님의 글을 생각하며 서 있었다.

함께 맞는 비.

지난해 광장에 모인 사람의 수가 천만이 아니고 백만이 아니라 
11만 3,374명이라고, 국민 민심 아니라고, 
불과 얼마 전, 향후 자신의 거취를 국회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했던,
그리고 바로 그 국회에서 탄핵된  '무기정학'의 권력자(의 변호인)가 말했다.

추운 겨울 국민들이 지척의 거리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다면
그는 몇십만몇천몇백몇십몇명이라고 숫자를 헤아리기 전에 먼저 그 소리에 다가 갔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그의 말대로 백만이 아니고, 그냥 천명, 백명이었다고 해도,
아니 단 한명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7시간' 동안의 행적이 무엇이었건 적어도 그 이후엔 함께 '비'를 맞아야 했다.
300여 명의 어린 목숨들이 물 속에 잠긴 이후 출퇴근길 전철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며  
우리 이렇게 아무일 없는 듯이 살아도 되는 것일까 곱씹어본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스러진 생명들에게 떳떳한 시민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자괴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오히려 그는 당당하고 '피눈물'은 엉뚱한 곳에 쏟는다.

아서라.
내가 무얼 더 기대한단 말인가.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을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것을 본 서울역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1968년 11월에 발표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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