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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58 - 양성우의「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by 장돌뱅이. 2017. 1. 14.


*사진 : 박종철 기념 전시실에서 촬영


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총창뿐인 마을에 과녁이 되어
소리없이 어둠 속에 쓰러지면서
네가 흘린 핏방울이 살아남아서
오는 봄에 풀뿌리를 적셔준다면
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골백번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 진흙의 한반도에서
다만 녹슬지 않는 비싼 넋으로
밤이나 낮이나 과녁이 되어
네가 죽고 다시 죽어
스며들지라도
오는 봄에 나무 끝을 쓰다듬어주는
작은 바람으로 돌아온다면
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혹은 군화 끝에 밟히는
끈끈한 눈물로
잠시 머물다가 갈지라도
불보다 뜨거운 깃발로
네가 어느날 갑자기 이땅을 깨우고
남과 북이 온몸으로 소리칠 수 있다면
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엄동설한에 재갈 물려서
식구대로 서럽게 재갈 물려서
여기저기 쫓기며 굶주리다가
네가 죽은 그 자리에 과녁이 되어
우두커니 늘어서서 눈감을지라도
오직 한마디 민주주의, 그리고
증오가 아니라 포옹으로
네가 일어서서 돌아온다면
지금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이 저주받은 삼천리에 피었다 지는 모오든 꽃들아
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1977년 발표)



오늘은 박종철열사의 30주기 추모식이 있는 날.

춥네요.

그래도 또 광화문으로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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