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60 - 조향미의「온돌방」

by 장돌뱅이. 2017. 1. 26.


온갖 탈법과 불법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하여
검찰에 강제로 끌려가는 장본인이
마치 군부독재시대의 민주투사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해괴한 시대입니다.
그래도 위로처럼 명절이 있어 다행입니다.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따뜻함과 흥겨움을 나누어 봅시다.

어린시절 이맘 때쯤이면 설 준비로 어머니는 부산하셨지만
문틈으로 들어오는 번철 위의 고소한 지짐이 냄새를 맡으며
친구들과 골방에 모여 만화책을 읽는 저는 한가롭기 그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씩 "이거 한번 먹어봐라" 하며 지짐이와 구운 흰떡과 조청을
접시에 담아 넣어주시곤 하셨습니다. 식혜나 수정과도 곁들여서 말입니다.
이제 어머니는 먼 곳에 계시고 딸아이와 사위, 그리고 손자의 인사를 받는
설날이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명절은 명절이어서 좋습니다.
(다만 명절을 '노동절'로 보내는 이 땅의 모든 며느리들에게는 위로를 드립니다.)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새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