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세 번도 더 부정'하고픈 해묵은 현실 속에
우리들의 꿈은 여전히 '압핀에 꽂혀'있다.
내일엔 또 다른 내일의 파도가 오겠지만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외치는 일이다.
만세!
만세!
만세!
내 조국은 식민지
일찍이 이방인이 지배하던 땅에 태어나
지금은 옛 전우가 다스리는 나라
나는 주인이 아니다
어쩌다 아비가 물려준 남루와
목숨뿐
나의 잠은 불편하다
나는 안다 우리들 잠 속의 포르말린 냄새를
잠들 수 없는 내 친구들의 죽음을
죽음 속의 꿈을
그런데 꿈에는 압핀이 꽂혀 있다
그렇다, 조국은 우리에게 노예를 가르쳤다
꿈의 노예를,
나는 안다 이 엄청난 신화를
뼈가 배반한 살, 살이 배반한 뼈를
뼈와 살 사이
이질적인 꿈
꿈의 전쟁,
그런데 우리는 갇혀 있다
신화와 현실의 어중간
포르말린 냄새나는 꿈속 깊이
사월에, 내 친구는 사살당했다
나는 기억한다 국민학교 시절
그가 책 읽던 소리,
그 죽은 지 십여년
책을 펴면 포르말린 냄새가 난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면
죽어서 자유로운 그의 목소리
그런데 여기엔 얼굴이 없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그런데
소리만 들린다
오 하느님, 하는 소리만
생각난다
어젯밤 붙잡혀간 시인의 넋두리,
그는 부정한다고 했다
세 번도 더,
조국의 관형사여
제 이름에 붙은 관형사
시인의 관이 무겁다고
머리를 떨구고
이제는 아름다운 말도 가락도 다 잊었다던
그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 무섭다
그가 돌아올 수 없는 땅이 무섭다
그가 돌아오지 않는 땅에서 사는 내가 무섭다
그러나 나는 결코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오, 기억하게 하라
우리들의 이름으로 불러보는
자유, 나의 조국아
*삼일절 저녁, 집회 시작 전부터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말한 '함께 맞는 비' - 그때의 의미와는 좀 다르지만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았습니다.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향하던 행진 대열은 이전처럼 안국로타리까지 가지 못하고
경복궁 동십지각 근처에서 막혔습니다.
'일상과 단상 > 내가 읽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64 - 신달자의「여보! 비가 와요」 (0) | 2017.03.28 |
---|---|
내가 읽은 쉬운 시 63 - 이수복의「봄 비」 (0) | 2017.03.05 |
내가 읽은 쉬운 시 61 - 윌리엄 브레이크의「아기의 기쁨」 (0) | 2017.02.08 |
내가 읽은 쉬운 시 60 - 조향미의「온돌방」 (0) | 2017.01.26 |
내가 읽은 쉬운 시 59 - 김창완의「파도가 파도에게」 (0) | 2017.01.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