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64 - 신달자의「여보! 비가 와요」

by 장돌뱅이. 2017. 3. 28.





날이 새면 아내가 밤을 날아 귀국을 한다.
아내가 없는 사이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가 피었고
아파트 옆 학교의 양지바른 교정엔 흰 목련이 만발을 하였다.
아내는 분명 그 꽃들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현관문을 들어오면서
우리만 누리는 행운인 양 감탄사와 함께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끊어졌던 일상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여보! 비가 와요."
"하늘이 너무 고와요!"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우리를 살게 하는 그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을 위해서
세상엔 아직 증오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또한 기억하면서.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 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 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