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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2000방콕&푸켓4

by 장돌뱅이. 2017. 8. 25.

33. 샹그릴라 디너크루즈
A와 T의 집들이를 마친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려 길을 나섰다.
샹그릴라호텔에서 운행하는 디너크루즈를 타기 위해서였다.
딸아이는 지난 여름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에서 샹그릴라에 묵어본 후 샹그릴라의 팬이 되었다.



로비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쵸코렛 냄새가 알맞은 정도로 달콤하게 풍겨왔다.
갈색과 흰색의 쵸코렛을 조각하여 만든 대형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커피�痔�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역시 샹그릴라답다며 찬사를 보냈다. 우리는 챠오프라야 강가로 나가 배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저녁바람이 살풋이 불어와 주었다. 목욕을 마친 후의 개운한 피부에 와닿는 상쾌한 저녁바람을 나는 좋아한다.
한대수의 노래처럼 행복은 때로 '춤추는 산들바람을 느껴보는' 것에도 있고, '걸어보는 가벼운 풀밭' 위에도 있고,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에도 있다.

나는 사실 배를 타고 식사를 하는 강상 여행에 그다지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
언젠가 아유타야에서 방콕으로 오는 길에 배를 탄 적이 있다. 배를 타기 전 생각으로는 흐르는 배에 몸을 맡긴채
느긋하게 양쪽 강변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는 것이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배를 타보니 그렇지 못했다.
가끔씩 지나가는 배에 손을 흔드는 것이 전부일뿐 맹숭맹숭한 것이 영 무료한 여행이었다.
버스보다 한시간 정도 더걸린다는 사실에 괜히 손해본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샹그릴라의 디너크루즈도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배가 출발하면서 더욱 감미롭게 불어오는 저녁 강바람과 차분한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우리는 예약할 때부터 에어컨이 있는 일층이 아닌 OPEN AIR 상태의 2층을 원했는데 운행하는 동안
툭 터진 시원스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좋았다.

옆으로 스쳐가는 어떤 디너크루즈에서는 번쩍거리는 조명과 함께 뭔가 요란한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마 단체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배인 듯 했다. 우리는 조용히 흘러가는 강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고
이약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배가 상류의 반환점을 돌아 내려오면서 왓 아룬에 가까이 왔을 때 이제까지 사원의 높다란 탑을 빛내던
흰색의 조명은 빨강·노랑·파랑·초록 등의 천박한 원색으로 바뀌며 왓 아룬을 현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다소 당황스런 느낌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조명쇼는 10분쯤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친절하게도
우리가 탄 배는 사원 가까운 강물에 머물러 있었다.


*위 사진 : 왓아룬 WAT ARUN


나는 왓포의 '누워있는 부처'와 함께 왓 아룬을 방콕의 여러 볼거리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천박한 색깔의 조명에 온몸을 내맡긴 채 서있는 왓 아룬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낮동안 챠오프라야 강가에 우뚝 서 빛나는 옛 태국의 문화를 증거하던 당당한 모습의 '새벽 사원'이 밤이 되면서
갑자기 야시장 한모퉁이에 끌려나와 구매자를 기다리는 초라한 상품이 되어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까지 하여야 할까?" 태국의 산업 중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무엇보다 압도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태국을 찾는 이들에게 무엇이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왕이 배를 타고 행차하는 모습도 왕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정치적인 의도와 함께 아니라
다분히 관광용임을 생각한다면 기왕에 있는 건축물에 색색의 조명을 쏘아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려는 그들의 '프로'(?)적인 발상은 칭찬받아야 옳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관광객들처럼 나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서도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 조명의 색이라도 잘 선택하지......


며칠 전 외국 손님들과 함께 용인의 민속촌을 다녀왔다.
민속촌이라는 것이 전문적인 학계의 인정을 받을 만한 곳은 아니겠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리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옛 생활의 일면을 집약해서 보여주는데 있어서는 그만한 장소도 없다고 생각된다.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필수 코스 내지는 명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위 사진 : 태국 ROSE GARDEN의 공연장


세상엔 전문적이고 '클래식'한 것도 필요하지만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것도 필요한 법이다.
태국 로즈가든의 문화 공연과 같은 부담스럽지 않고 스피디한 공연을 곁들여 수원성이나 이천 도자기 단지등과
함께 연계시킨다면 서울에서 훌륭한 당일 코스의 여행 상품이 되지 않을까 한다.


민속촌은 10년 전 방문 때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줄타기와 전통 혼례식등의 공연이 산발적인 것이 그랬고,
장터마당의 음식거리가 그랬다.
단 한가지 변화인 입구 쪽에 생긴 놀이공원과 국적불명의 건축물은 거의 '재난(DISASTER)' 수준이었다.
도대체가 FOLK VILLAGE라는 이름을 걸은 장소에 후크선장의 동상이나 조잡한 서양 건물을 지을 발상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장사가 잘되지 않았던지 대부분의 건물엔 큰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건물마다 페인트는 벗겨져 괴기스런 느낌마저 풍겨나왔다.
베이징이라는 영문 간판이 걸린 쇄락한 중국음식점 문을 두들기던 두명의 서양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개를 흔들며
돌아나오고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한 밤중에 왓 아룬에 쏘아대던 조명은 차라리 봐 줄만한 것이었다.
함부로 남에 대한 평가를 내릴 건 못된다. 더군다나 내 눈 속에 박힌 바위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박힌 티끌만 찾아내는 경우가 될 때 우리는 잘못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저지르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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