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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2000방콕&푸켓3

by 장돌뱅이. 2017. 8. 25.

32. 태국 친구 집들이


태국인 A와 그의 남자 친구 T가 오랜 만남 끝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알려 온 것은 11월 말이었다.
12월 초에 결혼식을 한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려주면서 연회 초대장을 이메일로 보내 온 것 이다.
그러나 예식 당일에는 회사일과 딸아이의 시험이 끝나지 않아 갈 수 없었다.
짜뚜작 시장을 나온 우리는 A와 T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의 둥지는 방콕 외곽에 있었다.
새롭게 단장한 흰색의 아담한 집에서는 외관에서부터 희망과 설레임에 부푼 신혼의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거실 벽에 태국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붙어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태국왕의 전치적 역사적 의미가 무엇이건 왕을 섬기는 태국인들의 마음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집단의 광기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지극과 정성이다.


우리는 태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결혼식 비디오 태잎과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A는 방콕 출신의 순수 태국인이고 T는 남부 수랏타니 출신의 중국계 태국인이다.
결혼식은 아침 일찍 신랑이 신부의 집을 방문하여 신부의 부모에게 결혼 허락을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신부 A는 몸단장과 준비를 위해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났다고 했다. 이후에는 9명의 승려가 동석하여 예식을 주관했다.

피로연은 저녁 때 호텔에서 있었는데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입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낮동안의 예식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면 저녁의 모임은 자유롭고 흥겨운 분위기이다.
신랑 신부가 모두 일본인 회사에 다니는 관계로 양사 사장이 나와 서툰 태국어로 축하를 해주었다고 한다.
한 사장은 메모지를 보며 태국 노래를 부르기까지 하였는데 모두들 배를 잡고 웃는 모습이 화면을 스쳐 갔다.
아마 엉망인 그의 노래 솜씨 탓인 듯 했다.

이어서 사회자가 나와 신랑, 신부를 세워 놓고 짓궂은 질문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어떤 질문과 대답에 큰 웃음 소리가 나길레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다.

"신랑, 신부는 전번 회사에서 만난 사내 커플로 알고 있는데 처음 신랑은 신부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처음부터 사랑에 빠져 들었나요?"

"천만에요. 업무 때문에 많이 부딪히면서 '누군지 이 여자 남편될 사람은 무척 피곤하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무척 피곤하시겠네요?"
"아니요. 전혀."
인연은 그런 것이다.

A는 결혼식 날의 피곤했던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수다를 피웠다.
그럼에도 이튿날 열차편으로 수랏타니로 가서 신랑측 지인과 친척을 위해 중국식 결혼식을한번 더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엔 형식을 갖춘 의식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식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A와 T의 태국식 혹은 중국식 전통 혼례 모습은 볼 만 했고 아름다웠다.
나는 현대식 예식장에서 대량 생산품처럼 허겁지겁 예식을 치뤘지만 피곤하다고해서 버릴 수 없는 심오한 뜻이
번거로운 절차 속에 스며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형식은 때로 내용을 담는 그릇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우리 전통 혼례식에서 사용되는 물품 중 나무 기러기를 좋아한다.
이번 A와 T의 결혼 선물로 내가 가지고 간 것도 이 나무 기러기 한 쌍이다.
우리 전통 혼례식에서 혼인할 때 신랑이 기러기를 가지고 신부 집으로 가서,
상 위에 놓고 절하는 것을 전안례(奠雁禮)라고 한다.


기러기는 이 세상의 온갖 깃털을 가진 새인 우(羽)와, 터럭을 가진 짐승인 모(毛)와,
비늘 가진 물고기 린(鱗) 중에서 유신(有信)을 천성으로 지키는 새라 하던가.
그들은 겨울철에는 남쪽으로, 여름철에는 북쪽으로 철을 따라 다니는 수양조(隨陽鳥) 이다.
태양을 따르는 새인 것이다.
또한 한 번 맺어진 한 쌍은 서로 헤어지지 않고 똑같이 살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다른 새와 다시 만나지 않는다.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정절(貞節)이 아닌가.

                                                           - 최명희의 소설, 혼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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