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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1999 방콕&푸켓10(끝)

by 장돌뱅이. 2017. 8. 23.

27. 여행 마지막 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딸아이는 이제 완전히 태국 시간에 적응이 되었는지 태국 시간 9시가 되어도
일어날려고 하질 않는다. 아내와 둘이서만 아침 숲길을 걸어 마리나 코티지 안에 있는 식당 'SALA THAI'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오전엔 까론비치에서 마지막 바다 수영을 즐기고 점심은 까따마마에서 게튀김과 새우튀김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또 보트하우스로 가 툭 트인 바다를 보며 싱하 맥주를 마셨다.
그동안 딸아이는 머리 몇 갈래를 더 땋았다. 지난 번에 땋은 머리 갈래가 약간 부족한 듯하여 서운하다더니
그 부분을 메꾸어 한국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도 보여 주겠단다.

오후엔 마리나 코티지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저녁이 되었다. 우리는 푸켓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ON THE ROCK'으로 갔다.
자리에 앉자 변함없는 살풋한 바닷바람과 끊임없이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에 가슴이 무언가 충만함으로
꽉 차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약간의 아쉬움도 뒤따라왔다.
또 한 번의 여행을 마무리 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많은 날을 두고
우리는 이번 여행을 되새김질 하리라. 딸아이를 세우고 푸켓에서의 마지막 사진을 찍는 뒤쪽으로
안다만 해의 빛나던 노을도 점차 스러지며 추억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 말은 밥에 김치를 먹었다. 
그래 이 맛이야. 새콤한 김장 김치가 입맛을 돋구었다.
그렇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온 것이다.
우리가 잠시 비운 사이 어느 틈엔가 마루 바닥에 내려 앉은 먼지를 닦아내며
일상은 이렇게 구질구질한 것인가 생각해 보지만 우리는 이제 쉽게 권태로워 하지 않을 것이다.
태국에서 담아온 아름다운 기억이 오래도록 우리의 생활 안에 머무를 테니까.
끝끝내 왕성한 식욕으로 건강함을 유지한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자식은 전생의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이라는 말이 있던가?
아내와 내가 아직 즐겁게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우리 딸에게도 언제나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전한다.


28. 아내가 붙이는 글
딸아이가 세상에 나온지 채 100일이 안된 어느 일요일, 남편은 시외에 있는 유원지를 다녀 오자고 했다.
그 때는 나들이에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라 휴일에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면 콩나물 시루같은
정원 초과의 버스에 시달려야 했다. 나로서는 아직 백일도 안된 갓난아이를 데리고 아수라장의 버스를
탄다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리 만원 버스라도 애 숨쉴 공간은
있는 법이라며 고집을 세웠고 나는 마지 못해 궁시렁거리며 뒤를 따랐다.
그것이 우리 가족이 함께 나선 최초의 여행이었다.

그 이후로 여행은 우리에게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남편은 타고난 장돌뱅이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기차와 직행 버스 시간을 조사했고 나는 아이 젖병과 기저귀를 챙겨 틈나는 대로 이곳 저곳을 찾아 다녔다. 
우리 차(남편 표현에 따르면 적토마)가 생긴 뒤로 우리는 활동 반경을 넓혀 강원도 최북단에서 전라도 땅끝까지
사랑스런 우리 국토를 둘러 볼 수 있었고 몇 번인가 해외 여행도 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애초 태국 북부 지방을 계획했으나 도중에 푸켓으로 바꾸었다.
딸아이가 줄기차게 '여행은 오직 푸켓뿐'이라고 우긴 것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세 번째 태국 여행을 하고 나서 나는 어떤 나라를 다녀왔다고 쉽게 완결형으로 말할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란 가면 갈수록 그 곳에 대해 모르는 것이 늘고
다시 가고픈 마음이 절실하게 일어나는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이 곳에 여행 후기를 쓰는 동안 우리 집은 내내 태국 분위기에 젖어 살았다.
유행가 가사 같지만 우리가 없는데도 방콕 챠오프라야 강가의 불빛이 밝고,
AUTHER'S LOUNGE에는 은은한 연두빛이 흐르고 있는지, 그리고 푸켓의 바다는 여전히 맑고
보트하우스에 불어오는 밤바람은 싱그러우며 MONGKOL은 또 누구에겐가 그렇게 친절한 것인지......
샘이 난다. 어서 다시 가서 그 정겨운 모습들 속에 파묻혀 봐야지.

남편에게 감사한다. 언제나 명랑한 우리 딸아이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을 도와주신
이 곳의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새로 산 돼지 저금통의 이름을 아직 짓지 못했다.
이 놈 살이 찌면 어디로 몰고 가야지?
나는 이번 여행의 과도한 경비 지출에 가계부를 끌어 안고 고민을 하면서도
어느 덧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철없는 아내'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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