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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1999 방콕&푸켓8

by 장돌뱅이. 2017. 8. 22.

21. 푸켓에서 차를 몰다.
아침 일찍 해변으로 나가 보았다. 어제 저녁 무렵 내린 비로 모래사장이 더욱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또 하루동안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는 청년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설탕처럼 고운 모래에 발을 디디자
뽀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놀란 어린 게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 정말로 곱디 고운 모래였다.

호텔로 돌아오니 여기저기에 한국에서 온 신혼부부들이 눈에 띈다.
그들의 젊은 모습이 아침 바다처럼 싱싱해 보였다.
아침을 먹고 아카디아 호텔 내에 있는NATIONAL CAR RENTAL에서 차를 빌렸다.
우리는 12시간 대여을 원했지만 최소 대여시간이 24시간이라 하여 어쩔 수 없이 보험료 포함
1950바트를 주고 일제 소형 승용차를 하루동안 빌리기로 했다.



차는 아직 1000KM도 운행하지 않은 새차로 상태가 매우 좋았다. 시험삼아 호텔 내부를 두바퀴쯤
돌아보고 바로 실전으로 돌입했다. 처음에 얼마동안은 바뀐 왼쪽 오른쪽 때문에 긴장했지만
오래지 않아 테이프를 밀어 넣고 음악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4223과 4024번 도로를 따라
푸켓 남부 해안을 돌아서 푸켓시내로 들어가 점심을 먹고 빠똥 비치로 내려와 북으로 방타오 비치까지
간 후 4025와402번 도로를 타고 다시 푸켓시내로 내려와 저녁을 먹고 빠똥을 경유 아카디아로 돌아오는
8자 모양의 코스를 계획했다.

까론 비치를 출발하여 까따노이 비치 - VIEW POINT - 나이한 비치 - 야노이 비치 - 라와이비치까지는
한적하고 오붓한 해안도로가 이어져 운전하기가 편안한 길이었다 . 우리는 잠깐씩 내려 증명사진을 찍고
주변을 어슬렁 거려 보았다. 어느 곳이나 맑고 푸른 물이 출렁거렸다. 다만 라와이 비치는 수심이 깊어 보였고
해변의 모래는 조금 거칠었다. 썰물 때는 바닥을 드러낸 갯벌에서 조개줍기도 한다던데 우리가 갔을 때는
밀물 때로 바닷물이 해변 가까이 밀려와 있었다.

푸켓시내 펄 극장 옆의 바미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빠똥으로 향했다.
빠똥 해변은 지난번 여행 때 머물렀는데 적당한 깊이와 알맞은 파도가 물놀이를 즐기기에 더 없이 좋았다.
그 때 우리는 도착 첫날 오후 햇빛이 가장 강한 시간에 멋모르고 이 곳에서의 물놀이에 정신이 빠졌다가
가족 모두가 완전히 바비큐가 되어 (단순히 피부가 벗겨지는 수준이 아닌) 온몸의 '껍질'을 갈아치운 경험이 있다.

빠똥의 반림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북쪽으로 드라이브를 계속했다. 낮에 본 반림파는 빠똥비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빼어난 위치를 느낄 수는 있었으나 그 외엔 깔끔하고 평범한 식당이었다.
까말라비치, 수린 비치를 지나 방타오 비치의 쉐라톤까지는 우리나라 시골국도처럼 번잡하지 않은 길이
이어져 이방인 초보 운전자에게는 더 없이 좋았다.

쉐라톤이 속해 있는 라구나 비치 리조트는 다섯 개의 훌륭한 호텔이 호수를 통해 하나의 거대한 단지처럼
이어져 있는 곳이다. 2년 전 우리는 알라만다에 하루를 묵었었는데 딸아이는 그 짧은 시간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곳은 해변보다 각 호텔의 저마다 특색있는 수영장이 좋은 곳으로 우리는 셔틀 보트를 타고 돌며 수영장 순례를
시도했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는 쉐라톤 내부를 걸어 커피숖을 찾았다.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추억이 있으므로 세상의 어떤 것은 비로소 다른 것과 구별된다 .
우리가 여기에 머물렀던 기억이 없다면 이 곳을 가슴 속에 묻어 두지 않았다면, 이 곳은 세상의 많은 장소와
동일한, 여행 안내 책자에 나오는 무수한 다른 호텔과 차별이 없는 건조한 장소가 될뿐이다.
'어린왕자'에서는 그것을 '길들인다'고 표현했던가?. 길들이고 길들여지고 그래서 푸른 바다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과 잠시 스쳐 지나간 먼나라 낯선 사람도 이곳에선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 모든 것이 마치 우리만을 위해 있는 것인양..... .
시인 김수영이 말했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22. 바미국수집

'푸켓22'에서 '세계에서도 최상급의 맛'으로 평가한 식당이다.
우리는 차를 메트로폴 호텔에 주차시킨 후 천천히 MONTRI ROAD를 따라 바미 국수집을 찾아 걸어 갔다.
펄극장 옆골목 초입에 있는 이 식당은 간판이 어지러운 태국어로만 쓰여있어 '푸켓22'에 나온
무뚝뚝한 주인 아줌마의 사진과 얼굴을 곁눈질로 대조해 보고 들어갔다.
그 아줌마는 정말 '용건만 간단히'하는 스타일 인듯 내가 사진기를 보여주며 찍어도 되겠느냐는 뜻으로
"오케이?"하자 답변으로 "오케이!"한 뒤론 식당을 나올 때까지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냥 무덤덤한 달인의 표정으로 마치 기계처럼 국수를 만드는 손놀림만 부지런했다.

우리는 저마다 물국수와 비빔국수를 한그릇씩 먹어보기로 했다. 맛은 명성 그대로였다.
딸아이는 이 집을 보트하우스와 함께 푸켓 제일의 식당으로 평가하며 한달이 지난 요즈음도
배가 출출할 때면 종종 이 집의 국수를 들먹이곤 한다. 나중에 보니 국수 여섯 그릇에 콜라3병을
합친 값이 210바트였다. 솔직히 우리를 황홀하게 했던 맛에 비해 너무 싼 값이어서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23. 식당 "카쪽시"와 푸켓의 밤운전
방타오 비치의 쉐라톤을 나온 우리는 해변길과 작별하여 섬내부 도로를 따라 달렸다.
푸켓 시내로 돌아와 다시 메트로폴 호텔에 차를 세웠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우리는 급할 것 없는 걸음으로 RASADA 거리를 돌아보며 카쪽시를 찾았는데,
아직도 개점 시간이 전이어서 입구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려야 했다.

우리를 뒤따라 한 서양인 청년이 들어왔다. 어디에서 왔냐고 하니 스웨덴에서 왔단다.
'나홀로 여행'을 하는 그의 모습이 깃털처럼 경쾌하고 가벼워 보였다.
"혼자 여행하는 것도 재미있을까?" 딸아이가 묻는다.
"여럿이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겠지."
나도 가끔씩 혼자 산행을 할 때가 있는데 그 때 느낄 수 있는 나 혼자만의 호젓함 역시
동행이 있는 산행만큼이나 짭잘한 재미가 있는 것이었다.



카쪽시의 음식에 대해선 '푸켓22의" 별다섯개 표시에도 불구하고 우린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더더구나 첫 손님인 우리는 식당의 준비가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주문을 하고 얼마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나중에 탁자 밑에 모기향을 피울 때까지 모기들의 무차별 공습으로 아랫다리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울룩불룩 해져 버려 이 때문에 가려움과 전쟁을 하느라 음식맛이며 분위기를 느껴 볼 경황이 없었다.
카쪽시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자 거리엔 어느덧 어둠이 내려있었다.

밤 운전은 낮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길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이정표마저 잘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
특히 푸켓시내에서 빠똥으로 넘어가는 4020과 4029번 도로에선 중앙선을 넘어 추월해오는 오토바이와
내 뒤쪽에서 좌우로 나를 추월해 나가는 오토바이들이 많아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다.
빠똥으로 접어들 때쯤엔 별안간 중앙선을 넘어오는 오토바이를 피하다 길가에 주차해둔 오토바이와
부딪히기도 했는데 제법 큰 소리가 난데 비해 천만다행으로 서로 아무 일이 없었다. 호텔로 돌아왔을 때
조수 역할을 했던 아내는 나보다 더 지쳐 있었다. 우리는 싱하 맥주로 오늘의 대장정을 자축하였다.


24. 식당 "KATA MAMA"
푸켓을 렌트카롤 한 바퀴 돌아본 뒷날 부터 푸켓을 떠날 때 까진 호텔 수영장과 해변만을 왕복하는
'게으른 일정'을 반복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전엔 수영장에서 저 편한대로 수영과 독서와 낮잠을 즐겼다. 
배가 고파 올 무렵 우리는 천천히 까따마마를 찾아 갔다. 까따마마는 이틀전 BOAT HOUSE를 갔을 때
위치를 눈여겨 봐둔 터라  곧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FRIED CRAB(또는 SHRIMP) WITH GARLIC AND PEPPER를 기본으로 왕새우구이에다가
'새우'자 들어가는 다른 몇 접시를 추가로 시켜 정말 미련스럽게 먹어 보았다.
배가 불러오니 비로소 주위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집은 TV 사극에 나오는
우리나라 옛 주막집 분위기를 풍긴다.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 중엔 식당 앞 바다에서 바로 나 온 듯한
수영복차림의 서양인들도 여럿이다. 어제의 BOAT HOUSE가 복장에 있어서만큼은 제약을 둔 완고함이
있었다면 이 곳은 대부분의 푸켓이 그렇듯이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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