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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1999 방콕&푸켓9

by 장돌뱅이. 2017. 8. 23.

25. 식당 BAAN RIM PA
BOAT HOUSE 2층에서 음료를 마시며 오후의 땡볕을 피한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카론 해변으로 나갔다.
딸아이가 해변 장사한테 돈을 주고 머리를 땋아 구슬을 달더니 무척 좋아한다. 구슬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려고
머리를 연신
좌우로 흔들어대며 즐거워한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보니 아직 우리 딸이 저렇게 어린 구석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그리고 부드러운 해변의 모래와 따뜻한 바닷물을 오가며
우리는 신나는 개구장이로 돌아가 보았다.





저녁 8시 30분. BAN RIM PA에 도착했다. 아카디아 앞에서 200바트에 탄 택시는 말로만 듣던
광란의 질주로 우리 가족을 공포에 몰아 넣었다. 이 운전사는 왕복 2차선의 도로를 편도 2차선으로
사용하며 급제동과 급출발을 무수히 반복하였다. 마약을 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한바탕 스릴있는 놀이기구를 탄 느낌이었다.

반림파는 낮에 보았던 모습과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 보였다.
얼음 조각이 있는 입구에서부터 알맞은 정도의 조명과 어둠이 섞여있는 실내까지
이틀전 한 낮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푸켓의 식당은 역시 밤이 제격인 것 같다.



와인 두잔과 손가는데로 THOD MUN GOONG을 비롯한 몇가지 음식을 시켰다.
과연 '태국 남부 최고의 분위기와 음식'이었다. 그리고 우린 맥주를 마시며 유명한 토미 아저씨를 기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연주 시간이 훨씬 지난 것 같은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안보였다.
"토미씨는 언제 연주를 합니까? "
"미안하지만 오늘 토미씨가 다른 일이 있어서 연주를 할 수 없습니다."
아이고!! 이런 일이 있나. 반림파의 음식은 이 곳의 자랑 토미의 연주에 비하면 '전주곡'에 불과하다는데......
스피커에서는 녹음된 토미의 연주 음악이 흘러 나왔지만 그것이 어찌 생음악에 비하겠는가.
섭섭한 마음으로 자리를 일어서는데 딸아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거봐 우리가 정말 푸켓에 다시 한번 더 와야 한다니까."
완벽한 삶이 없듯 아쉬움이 남지 않는 여행도 없으리라.
우리는 그 언젠가가 가까운 날이길 빌며 반림파를 나섰다.


26. 방라 거리를 돌아나오며 
마마나 호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한 편의 비디오라고도 하고 한 편의 비디오가 자식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겁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우린 그런 걸 믿지 않는 '나쁜 부모'이다.
비디오에 파랑 노랑 빨강 딱지를 붙여가며 등급을 메기는 어르신네들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어떨 때 보면 잘 모르겠거니와 도대체 우리 사회가 정말 비디오 하나만 잘 막으면 자식을
'싸가지'있게 키울 수 있어 노후에 '아들 딸 구별없이 두 번씩만 신세질 수 있게 되는' 사회인가도
우린 매우 의심스러워 하고있다.

살인, 방화, 폭력, 매춘, 강간, 잔인, 냉혹, 음모, 배신, 사기, 도박, 퇴폐, 간통......
혹 이런 것들이 보물단지같은 우리 아이들을 망치는 주범이므로 아이들 눈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선 MBC, KBS, 9시뉴스부터 방송금지를 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뉴스에는 아니 우리 사회에는 이미
그런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우리 부부는 인신매매 및 매춘에 관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프로의 내용이 내용이니만치 '눈치없이' 계속 앉아 있는 딸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이건 니가 보기에는 좀 그런 것 같으니 그만 볼 수 없겠냐?"
우리 딸아이는 착한 아이였다. (그때까지 성인용 비디오를 한 편도 안보여 줬으니까.)
그런데 알았어요 하며 일어서던 아이의 뒤이은 말이 우리 부부의 뒤통수를 때렸다.
딸아이는 한 수 가르쳐 준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보긴 하겠지만 저거 내일 학교에 가면 내용 다 알 수 있어요.
애들이 다 말해주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봐도 되구요...... " 
우리 부부는 인터넷맹이었으므로 잠시 띵한 표정이 되어야 했다.

새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흔히 떠드는 이른 바 정보의 홍수 속에 어른도 아이도 동등하게 노출 되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우리는 좀 생각을 바꾸기로 문제를 드러내기로 했다. 가급적 어떤 것이든 보여주되 설명해주기로.
물론 쉬운 일은 아니고 같이 보다보면 우리가 먼저 민망해 질때도 있고 우리의 용기가 부족해 사전에
보기를 포기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딸아이에게 퍼부어지는
모든 정보를 막아내고 일일이 선별해 줄 수도 없을 바에야 스스로 선별할 수 있는 힘을 키워 주고 싶은 것이
우리의 결론이자 바램이었다.

일테면 딸과 함께 빠똥해변 방라의 밤거리를 걸어 보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이 곳도 어쨌든 푸켓의 일부이니 우리도 보고 딸아이에게도 보여 주기로 한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은 기회의 제공일뿐이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받아드릴 것인가 왜 버리고 왜 받아드리는가
또는 어떻게 버리고 어떻게 받아드리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와 딸아이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우리는 사전에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휴양지이고
그들의 달러를 노려 온갖 종류의,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돈벌이 방법이 동원되는 곳이니 우리 생각과는
다른 일들을 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쉽게 생각해라.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 해변엔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들이 흔하듯 방라 역시 그렇게 우리와는 다른 이국의 환경이 만들어낸 특별한 모습이니까 등등......"

밤10시반 우리는 방라거리로 들어갔다. 아직 방라의 본격적인 시간이 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우리에겐 충분할 정도로 북적대었다.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가는 사람들과 어지러운 영문 간판,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번쩍이는 불빛과...... 우리는 방라의 중간쯤에서 길을 돌려 나왔다.
딸아이는 멀쩡한 것 같은데 우리 부부가 먼저 딸아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직 우리는 딸아이에게 방라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들려주지 못한 것 같다.
최근에 소설가 박완서씨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글의 일부를 옮겨 적음으로써 방라에 대한
우리의 의견으로 대신히고자 한다.
 
라스베가스는 누구나 알다시피 도박과 환락의 도시다......멀리서도 하늘이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보일 정도로 그 도시의 전기 불빛은 현란했다. 도시가 온통 깜박이고 돌고 춤추는 요상하고
휘황한 불빛으로 돼 있어서 정신이 돌 것 같았다. 얼이 빠진 김에 슬럿 머신에다가 이십오 센트를
있는대로 처넣는 짓거리까지 해 보았다.
다음날 아침 맨정신으로 네온의 불빛대신 햇빛에 드러난 이 도시를 바라보는 느낌은 참혹했다.
도깨비에 홀렸다 깨어나도 이보다 더 황당하지는 않으리라. 아무리 호화 호텔도 외부에 얽히고
설킨 불 꺼진 네온의 잔해 때문에 폐허처럼 보였다. 도시 둘레는 풀 한포기 안나는 사막이고
라스베가스는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추악한 폐허에 불과했다. 어리둥절한 황당감이 가시자
공포감이 엄습했다. 우리가......자본주의의 악의 꽃만 들입다 수입해다 정신없이 즐기다가
어느 날 문득 불빛이 사위어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사막화된 황무지 한 가운데 서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푸켓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아름답기만한 곳은 아니다.
절제되지 않은 자본주의는 많은 것을 황폐화 시킬 수 있다.
분명 푸켓의 모든 해변이 방라처럼, 서양의 어느 뒷골목처럼 변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푸켓과 여행객이 모두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그렇치 않으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푸켓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절망스러워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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