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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2000방콕&푸켓1

by 장돌뱅이. 2017. 8. 24.

*여행 시기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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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여행은 그냥 노는 것
도끼, 사진기, 방망이, 화투, 휴지, 거울, 젓가락, 젖병, 풀......
이 단어들을 보고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각각의 단어 사이에는 발음상으로도 뜻으로도 어떠한 연관성도 없어 보였다.
그것들은 딸아이의 친구들과 후배들이 고입선발고사 전날 수험생인 딸아이에게 보내 준 것들이다.
도대체 이런 물건들이 시험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도끼에 화투라니.....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끼모양의 상자 안에 든 엿과 커다란 화투곽 안에 들어있는 사탕이라니......

의아해하는 나와 아내에게 딸아이는 설명을 해주었고 그 연후에야 우리 부부는
새삼 우리가 '구닥다리 세대'임을 인정해야 했다.

딸아이의 설명에 의하면, 도끼와 사진기는 '잘 찍어라'라는 의미이고, 방망이와 화투는 '잘 쳐라',
휴지는 '잘 풀어라', 거울은 '잘 봐라', 젓가락은 '잘 찝어라', 젖병은 '젖 먹던 힘까지',
풀은 '꼭 붙어라' 라는 의미라고 한다.
의미없는 단순한 말장난인 것 같기도 하지만 발상이 기발해 보여 재미있었다.

나는 학창 시절 시험을 본다고 해서 특별히 엿을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
다만 시험 뒷날이면 신문에 자식들이 시험보는 학교 교문에 커다란 엿을 붙여놓고 기도하는
어머니들에 대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린 것을 본 적은 있다.

딸아이가 받은 시험격려물들이 비록 장사치들의 얄팍한 상술이 섞인 아이디어라고 해도
우리 세대의 교문에 붙어있던 투박한 갈색의 땅콩엿과는 감각과 느낌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고
그것은 그대로 작게나마 시절과 세대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겠다.


이번 여행은 바로 그 딸아이의 고입선발시험이 끝나는 때를 맞춰 떠나기로 하였다.
12월14일이 시험날이므로 바로 그 뒷날인 15일을 출발일로 삼은 것이다.
시험이 끝났다고해서 물론 등교를 안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능이나 고입선발고사가 끝나면
실질적인 학교교육이 끝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인 듯하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만한 효율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입시에 쫓겨 그동안 못해왔던 소양교육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예년의 경우를 보면 선발고사가 끝난 후 학교에선 그저 비디오 관람을 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한다.
여행은 그런 시간을 메꿀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라고 아내와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이번 여행의 '교육적 측면을 확대·과장·강조'한 내용의 계획서를 만들었다.
그냥 생각없이 놀러가는데 무슨 복잡한 의미를 달아야 할까마는 학교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전 여행시 학교의 높으신 분이 허락은 하면서도 국가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른바
'놀러가는 여행'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애국적인 훈시'를 덧붙였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여행 = 놀기 = 낭비 = 비생산 = 비효율의 등식에 익숙하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구호가 그런 것처럼.
근데 여행은 사실 비용을 지불하고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시간을 벌러 가는 행위 아닌가.

   축제란 일상적 삶을 지배하는 모든 규칙들이 일시적으로 중지되는 기간인
   '일상적 삶의 일시적 정지' 라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축제기간을 통해 벌어지는
   '일상의 전복' 으로, 인간은 새로운 영감과 참여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얻게 된다.

   일상의 경계를 벗어난 곳에서 스스로가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새로운 재생산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축제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의 글이었던가. 인용글 속의 '축제'란 단어를 나는 여행으로 바꾸어 읽곤 한다.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것" 이라고 했다.(구본형)
그렇다면 교육은 이를 키우고 북돋우는 것이어야 할 테고 그것은 교실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등교하여 비디오나 보며 '때워야' 하는 수업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합격을 기원하는 엿조차 옛날에는 갈색의 투박한 모습 일색에서 기발하고 다양한 모습과 감각으로 변하는 세상 아닌가.
교육 역시 이제는 교복과 칠판과 책상과 걸상만의 '투박한' 모습에서 좀 벗어났으면 한다.



30. 또 태국이야?


'왜 또 태국이냐?'고 묻는 것은(또는 누구에게 어느 지역을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의 우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이야 말로 그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어디 영화분이랴. 여행도 그렇다.
 
거기에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

손톱보다는 발톱이 예쁜데, 손톱이 미운 것보다 발톱이 예쁜 정도가 더 크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손톱이고 발톱이고 그냥 사랑하는 것.

발톱뿐만이 아니라 발톱에 낀...때 속의...박테리아의...콧털까지...사랑하는 것이다.

왜 또 태국이냐는 물음에 대한 우리 가족의 답이다. 

숙소 체크 인을 한 후 샤워를 하고나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한밤 중에 도착하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보다 일찍 도착한 싱가폴항공 덕분에 저녁 시간이 여유로웠다.
우리는 숙소 근처 MK 수끼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수끼는 샤브샤브와 동일한 음식이다.

그리고 숙소 앞에 있는 BREW 하우스(스쿰윗 소이26)에서 맥주를 한잔 하였다. 
제법 유명한 곳인지 많은 사람들이 앉아 식사와 맥주를 하며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 속에 묻혀 있었다.

도착 첫날의 맥주 한잔과 이국에서 듣는 감미로운 생음악과 서둘 것 없는 느긋함.
그리고 아내와 딸아이와의 한가로운 잡담.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태국에서 지낼 수 있는 기한이 앞으로 며칠씩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창고 속에 쌓아둔 곡식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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