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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지난 여행기 - 2001콩코출장기(끝)

by 장돌뱅이. 2017. 9. 6.

3. 킨샤사(KINSHASA)에서 

짙은 어둠에 묻힌 킨샤사 공항으로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끄러져 들어갔다.
드디어 왔구나! 나는 안도감과 함께 초행길이 주는 약간의 긴장감을 느꼈다.
책이나 영화에서 본 엉클톰과 쿤타킨테와 피그미족과 부시맨의 땅. 아프리카!


WHEN YOU ARRIVE IN KINSHASA BY AIR, YOU WILL BE SURROUNDED BY GANGS OF
MILITARY PERSONNEL IN CIVILIAN CLOTHES WHO WILL HOLD YOU, YOUR LUGGAGE
AND YOUR PASSPORT HOSTAGE UNTIL YOU GIVE THEM MONEY.
IF AT ALL POSSIBLE, HAVE SOMEONE WHO KNOWS THE ROPES MEET YOU AT THE AIRPORT.

(킨샤샤에 도착하면 사복을 입은 일단의 군인들이 당신을 둘러 싸고 당신이 돈을 내놓을 때까지
당신과 당신의 짐과 당신의 여권을 붙잡아 둘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런 곤경을 피할 방도를
가진 사람을 공항으로 나오도록 하라.)

 
-『론리 플래닛』 중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려 출구까지 걸어 나가야 했는데 공항답지 않게 매우 어두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VIP 룸으로 몰려 갔고 나도 이미 약속되어 있던 현지인을 따라 그곳으로 갔다.
작은 VIP 룸은 수 많은 사람들로 혼잡스러웠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VIP가 아니어서
보통의 통로를 따라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VIP룸 내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한참을 기다린 연후에야 나는 입국 심사대에 서지 않고도
콩고의 입국이 허락되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베레모 차림의 경찰이 차 앞 좌석에 앉아
경호를 하는 차량을 타고 킨샤사 시내로 들어가자니 안심이 된다기 보다 도리어 긴장이 되었다.
이렇게 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일까?
나를 맞아 준 콩고인은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것이지 위험이 실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참고로 현재 콩고 수도 킨샤사에 있는 군중들의 경우 외국인에게 상당히 적개심을 품고 있다고 하니
귀사에서도 사업 추진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콩고 사업 관련한 통계조사를 의뢰를 한 우리나라의 무역관련 기관에서 회신을 하며 공문에 덧붙인 말이다.
이 말을 콩고인 파트너에게 하였더니 그는 크게 웃으며 과장된 말이라고 가볍게 일축했다.


나는 인터넷과 책자에서 얻은 내용들도 물어 보았다.

KINSHASA IS A DANGEROUS CITY AT ANY TIME OF DAY. THIEVES AND MUGGERS ABOUND,
VIOLENT CRIME IS COMMON AND POLICE AND ARMY PERSONNEL CONSTANTLY TARGET
TRAVELLERS FOR BRIBES.

(킨샤사는 하루의 어느 때건 위험한 도시이다. 좀도둑과 강도들이 도처에 있고, 
강력범죄가 흔하게 일어나며 경찰과 군인들은 여행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뇌물을 노린다.)                                             
-『론리 플래닛』 중에서-



ALTHOUGH ARMED SOLDIERS AND POLICE ARE COMMON IN URBAN AREAS, INCLUDING KINSHASA,
THE MULTIFUL AND COMPETING SECURITY FORCES OFTEN ARE UNABLE TO MAINTAIN ORDER.
ILL-TRAINED, ILL-PAID, WELL-ARMED, OPERATING IN A SYSTEM WITH LITTLE EFFECTIVE COMMAND-AND CONTROL,
THE SECURITY FORCES OFTEN ACT ARBITRARILY AND MAY, THEMSELVES, POSE A THREAT TO THE POPULATION
INSTEAD OF PROTECTING THEM." 

(킨샤사를 포함한 도시 지역에 비록 무장 군인과 경찰들이 흔하지만 복잡하고 경쟁적인 보안세력들은
질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지 못한다. 효율적인 지휘와 통계 체계가 극히 부실한 상황에서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하고 대우 받지 못한 그러나 무장한 보안세력들은 마음대로 행동하며 시민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종종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 2001년 2월 21일자 "미 영사 콩고 정보 자료" 중에서 -



PRESIDENTIAL AND OTHER OFFICIAL MOTORCADES POSE SERIOUS RISKS TO DRIVERS AND PEDESTRIANS
IN KINSHASA. WHEN YOU HEAR THE SIRENS OR SEE SECURITY FORCES ANNOUNCING THE MOTORCADE'S
APPROACH, PULL AS FAR OFF THE ROAD AS POSSIBLE AND STOP YOUR VECHILE.
PLEASE DO NOT TAKE PICTURE.
DO NOT USE YOUR CELLULAR TELEPHONE, RADIO OR ANY OTHER
COMMUNICATION DEVICES. PLEASE DO NOT RESTART YOUR VEHICLE OR MOVE UNTIL THE ENTIRE
MOTORCADE HAS PASSED BY. FAILURE TO COMPLY MAY RESULT IN ARREST."

(킨샤사에서 대통령이나 관료들의 자동차 행렬은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심각한 위험이 된다.
사이렌 소리를 듣거나
자동차 행렬을 알리는 경호원들을 보면 차를 도로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지고 차를 정지 시켜야 한다.

사진을 찍어서도 안되고 무선전화나 무전기 또는 다른 어떤 통신수단을 사용해서도 안된다. 전체 행렬이 완전히
지나 갈 때까지 차를 다시 출발시키거나 움직여서도 안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체포될 수도 있다.) 
 
 - 2001년 2월 21일자 "미 영사 콩고 정보 자료" 중에서 -

위 사항에 대하여 그 콩고인은 킨샤사만큼은 안전하다고 극구 주장했다.
실제로 출장 중 나는 킨샤사 거리를 많이 걸어 다녀 보았는데 특별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특별히 위협을 느낄 만큼의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의 정보들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호텔 주변에는 밤이 되면 매춘부들이 많이 서성 거렸고 (그들은 동양인을 보면 늘 '니하오마'라고 중국말을 던져와
중국인들의 내왕이 빈번함을 알려주었다) 거리에는 부랑자와 노숙자들이 많았으며 조잡한 상품을 들고 끈질기게
따라 붙는 장사꾼들 또한 많았다. 그것만으로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과잉 판단이겠다.
하지만 콩고에서는 군인들이 처우에 대한 불만을 품고(월급 미지급) 폭동을 일으켜

상점을 습격하고 상품을 약탈하는 일이 90년대에 들어 두 번씩이나 발생했고,
출장 
불과 세 달 전에는 현직 카빌라 대통령이 암살되는 일까지 있을 만큼
정치 · 사회적으로 혼란과 위험의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그나마 킨샤샤는 수도권이라 치안 상태가 나은 편인 모양이다.
반군 영향권 혹은 반군과 대치 상태에 있는 지역에서는
치안이 상당히 불안한 상태라고 한다.
킨샤사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여행자들은 여행 목적에 상관없이 사전에 내무부
장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방문지마다 있는 IMMIGRATION OFFICE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다.

콩고만의 희한한 제도는 바로 이런 준전시 상황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이런 제도를 악용하여 여행자들을 괴롭히는 관료와 군인들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동일한 내용을 세 곳에 신고해야 하며 신고처마다 돈을 요구하여
불응할 경우 온갖 트집과
장시간의 조사가 이어진다고 한다.
일테면 이런 식이라고 한다.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여행하러 왔다."
"여행자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 

이거 진짜로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 아닌가.
'나는 진짜로 여행자입니다(THIS MAN IS DEFINITELY A TOURIST)'라고 이마에 문신이라도 새기고 다니면 될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눈이 어둠에 익자 그 어둠 속에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 서있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어가고 노점상을 둘러싸고 뭔가를 고르고 음식을 사먹고......
그 어둠 속에서도 그런 일상의 생활이 있다는 사실이 무슨 좋은 소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길가의 집들과 노점상에 작은 점으로 줄줄이 켜져 있는 촛불에서 긴장되었던 마음도 다소 풀어졌다.

콩고는 한반도의 11배에 달하는 광활한 국토를지녔다.
국토를 길게 휘감아 도는 콩고강만으로도 아프리카 전체 수력 발전 잠재량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와 구리등 엄청난 지하자원과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콩고는 어쩐 일인지 아프리카에서도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아프리카의 이성과 선의의 목소리' (VOICE OF REASON AND GOODWILL IN AFRICA)라고
극찬을 한 콩고의 MOBUTU 대통령은 쿠테타로 집권한 이래 콩고를 30년 이상을 통치한 적이 있다.
그는 다이아몬드와 광물에 붙여지는 거의 모든 세금을 그의 개인 구좌로 집어 넣을 만큼 '이성'적이었다.
그리고 1974년 무하마드알리와 죠지 포먼의 세기의 대결을 킨샤샤에 유치하기 위해 1,500만불의 거금을
쾌척할만큼 '선의'적이었다. 그러나 콩고의 내전은 그의 통치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는 반군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었지만 내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콩고는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나라이다.
공항에서 킨샤사 시내로 향하면서 나는 죠셉콘래드가 콩고를 배경으로 한 소설,
'암흑의 핵심'(THE HEART OF DARKNESS)을 다시 떠올렸다.
이곳에서 '암흑'은 무엇이며 그 '핵심'은 무엇인가?


4. 익숙해진다는 것

한국에 자주 출장을 오는 독일인이 있었다.
그는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불고기와 갈비, 삼계탕과 파전 등 에서 시작된 그의 식도락은
몇 년이 지나자 생선회는 물론 보신탕까지 다가서게 되었다. 보신탕의 경우는 그냥 먹어봤다는 것에 만족했지만
회에 대해서는 생선별로 부위별로 맛을 평가하고 선호하는 생선과 부위가 생길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특히 그는 일식집 사시미보다 양념장과 마늘을 넣고 상추와 싸먹는 우리 한국식 회를 더 좋아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가지 규칙이 있었다. 귀국하기 이틀전 부터는 회를 먹어도 절대 마늘이나 양파를 먹지
않으며 가급적 김치도 먹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 봤더니 독일에 있는 아내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
포옹과 키스를 할 때 고약한 냄새가(마늘) 난다고 펄쩍 뛰며 한번만 더 그 냄새를 풍기면 이혼까지 불사하겠다고
심각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양치질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마늘 냄새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귀국 최소 이틀 전부터는 마늘을 먹지 않아야 문제가 없다고 했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마늘 냄새를 싫어하겠지만 나도 외국인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싫어한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이해를 할 뿐이다.
옆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서 역한 체취가 풍겨올 때
그 비행 시간은 고역이 된다.
특히 야간 비행일 경우 고개를 돌릴 때마다 언듯언듯 풍겨오는 냄새는
잠을 들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의 언행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되는 관계는 비극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한다.

킨샤샤에서 자주 그런 냄새와 마주쳤다.
자동차 안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식당에서, 미팅장에서......
(사족을 붙이자면 내가 맡는 이 냄새로 결코 누굴 비하하거나 차별해 본 적은 없다.
직접적으로 표현해 본 적도 없다. 단지 내 느낌을 말하는 것 뿐이다.)


*디지털 사진은 다 날아가고 유일하게 남은 필름 사진 한 장. 

10여 일 간의 출장이 끝나 갈 무렵 그 냄새를 어디서고 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승용차안에서도 갑자기 그 냄새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킨샤샤를 나오는 길 아수라장의 공항 출국장에서도 그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고 기내에서 내 옆에,
앞뒤에 앉아 있던 흑인 남자에게서도 그 냄새는 풍겨오지 않아 나는 킨샤샤에서 벨기에 브뤼셀까지
10 시간의 야간 비행동안 완벽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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