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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지난 여행기 - 2001콩코출장기1

by 장돌뱅이. 2017. 9. 6.

출장 기간 : 2001년 4월 하순 - 5월 초순
출장 지역 : 콩고민주공화국 ( D.R.CONGO, 한 때 "자이르"라는 이름을  갖기도 했다, 이하 "콩고")
               
콩고 역시 이 오래된 출장 때와는 다르게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어떤 형태와 시기이든 내가 접한 유일한 아프리카이기에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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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장과 여행

잘 다니던 든든한 직장을 어느 순간 정리하고 배낭 하나만을 달랑 맨 채, 홀연히 지구상의
오지를 찾아 떠났던 한비야씨는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기대를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아프리카.
나는 이 곳이 인간 본성의 체취를 맡을 수 있고 그 뿌리의 끝을 들여다 보게하는
대륙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인간이 동물과 분리되기 이전의 모습대로에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는 곳이며 원시 습속이 남아있는 벌거벗은 인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대륙, 아프리카. 과연 이곳은 내가 생각해 왔던 그런 대륙일까?

이런 호기심이 아프리카에 도착한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한비야,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중에서 - 
 

그녀가 기대했던 바를 아프리카에서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하면 흔히 가난, 기아,
질병, 전쟁 등을 생각하는데 비해 그녀의 발상은 그것을 넘어선 무엇에 닿아 있는 듯 했다.
사고의 출발점은 종종 그 이후의 행동과 판단을 규정짓게 되지 않던가.

그러나 이번 아프리카 출장을 앞두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생각이라기 보다는 그런 감상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처음 가보는, 그것도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이 있기는 했지만,
그 설레임보다는 업무 일정을 체크하고 준비하는 부산함과 출장 결과에 대한 부담감이 더 가슴을 묵직하게 눌러 왔다.
이것이 출장과 여행의 차이일 것이다.

똑같이 비행기를 타고 가고 기후와 문화가 다른 나라의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만난다는 의미에서
출장 역시 크게 보면 여행의 범주에 넣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과 놀이가 다르듯이 여행과 출장은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현격히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여행이 무엇이든 받아들이려고 가는 것이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업무상 출장이란
뭔가 자신을 드러내어 상대방에게 심어 놓아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때문에 준비 과정부터 이 둘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우선 출장은 사업 대상지와 원근 문제, 연락의 편리성등을 고려하여 호텔을 정한다.
출장자 자신의 기호가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업무 편리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일뿐이다.
표면적인 경비 절감만을 위해서 저가의 숙소를 잡는 것은 자칫 출장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그런 숙소의 선택은 상대방으로부터 회사의 신뢰도에 나쁜 선입관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은 철저히 이기적인 관점에서 계획되고 실행된다.
자신의 경비 예산과 여행 목적에 의거해서
적당한 수준의 숙소를 잡으면 되는 것이다.
출장이 업무 자체만 의미가 있는 행위라면
여행은 어떠한 숙소에 묵어도 그 자체가 여행의 의미있는 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는 것은 출장이나 여행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출장의 경우에는 초대를 하거나 초대받는 경우가 되어 식사의 내용을 선택하는대도 항상 상대방을 의식해야 한다.
여행은 먹는 것에서도 자유다. 길거리의 포장마차에서 국수 한그릇을 사먹는다고 해서
5성급 호텔이나 이름난 식당에 비해 저급한 문화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참고로 나는 부모님께서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는 입맛과 튼튼한 위장을 물려주어 
어느 나라 현지 음식이건 (맛이 있건 없건) 일단 즐겨한다.


*위 사진 : D.R.CONGO의 화폐 : 사설시장과 공식 환율의 차이가 너무 컸다. 매번 현지인을 통해 사설교환소를 이용해야 했다.


이번 출장에서는 상대방의 준비에 따라가느라 주로 서양식 식사를 했지만 
몇가지 현지 음식을 체험해볼 기회가 있었다.

우선 "삘리삘리"
이것은 고추와 마늘 등을 으깨어 만든 양념이다. 여기에 콩고사람들은 거의 모든 것을 찍어 먹는다.
매우 매워서 조심해야 한다. 처음에 나는 멋모르고 이것을 많이 찍어 먹었다가 생수깨나 먹어야 했다.
나는 이 한병을 사다가 지금 집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이름도 재미있고 귀엽다.

"삘리삘리"

그리고 "꼬사꼬사"

양념을 해서 찐 새우와 감자튀김 야채 등이 한 접시에 담아 나오는 음식이다.
전통 음식은 아닌 것 같으나 현지인들이 많이 먹는 음식이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이 음식을 주문했다.

"샤르망."
이름만 듣고 불란서 요리로 생각했더니 뜻밖에 레바논에서 온 요리란다.
갖은 양념을 커다란 밀전병에 돌돌 말아 온 것으로 멕시코 음식 또르띠야와 비슷해 보였다.

현지 교통 이용에 있어서도 여행과 출장은 다르다.
출장시의 교통은 빠르고 신속한 것만이 의미가 있다.
여행은 움직이는 그 모든 수단에 의미를 둔다.
비행기와 차량은 물론 오토바이, 툭툭이, 마차, 인력거, 그리고 두다리로 걷는 걸음걸이마저도 의미가 있다.
그렇게 출장과 여행은 준비에서 현지 진행에까지 그리고 사람과 사물을 대하고 느끼는 감성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4월말에서 5월 초에 걸쳐 아프리카 콩고 민주공화국으로 출장으로 다녀왔다.
내 아이디처럼 장돌뱅이의 임무로 다녀온 것이다.
콩고로 가면서 나는 죠셉 콘래드의 우울한 소설 '암흑의 핵심(THE HEART OF DARKNESS)'을 읽었다.

19세기말 작가가 증기선의 선장으로 콩고강을 오르내렸던 체험을 소설에 투사하면서 
콩고에 드리운 유럽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또 말론 브란도가 커츠 대령으로 나왔던 월남전 배경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으로 각색되기도 했는데,
제국주의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사하기에 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소속 말단 '장돌뱅이'로서 출장길에 내게 관심이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구매력(혹은 투자 매력)이다. 
상대자가 누구이건 그가 무슨 꽃을 좋아하건, 누구의 시를 즐겨 읽건,
어떤 음악을 즐겨 듣건,
아니면 그가 과거에 식민 지배국 군대의 말단 소총수를 지냈건 아니건
그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서로가 지닌 상품성과 구매력의 좌표 위에서 만날 뿐이다.
내가 아무리 출장을 여행처럼 하고자 사람과 만남에 중점을 둔다해도 출장 길의 만남은 선택이 아니라 지정인 것이다.
나의 직업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음에도 가끔씩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런 한계 때문이다.



2. 사하라 사막 위을 날으며

콩고로 가는 길은 내가 태어나서 해본 여행 중 가장 긴 여정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스위스 쮸리히를 거쳐 벨기에의 브뤼셀로, 브뤼셀에서 일박을 하고,
SABENA항공을 타고 카메룬의 야운대 공항을 경유하는 10시간의 비행을 더 하고나서야
목적지인 콩고의 킨샤샤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구를 종횡으로 긋고 다닌 셈이었다.


브뤼셀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지중해에 들어설 때쯤 나는 설핏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비행기의 여정 안내 화면은 우리가 아프리카 상공을 날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때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허겁지겁 밖을 내다 보았다.

아!......  사하라 사막!

창밖 아래쪽으론 노란색의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눈이 닿는 아득한 곳까지 가득한 노란색.
두 발로 걷는 것도, 낙타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닌, 기껏해야 수천 미터 상공의 비행기에서
그것도 작은 창문을 통해 제한된 시야로 내려다보는, 만남이라 할 수 없는 만남이었지만
사하라라는 이름만으로도 내게 경이로운 세상이었다.

서쪽으로는 대서양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이집트 나일강의 계곡까지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 사막의 넓이는 무려 한반도 면적의 40배에 해당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이다.

두 번째인 오스트레일리안 사막의 넓이가 사하라의 반도 되지 않으니 그것 자체가 하나의 우주라고 해도 되겠다.
우리가 흔히 사막이라하면 연상하게 되는 모래 벌판은 기실 사하라 전체 면적의 20% 밖에 되지 않으며
나머지는 자갈과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적인 통계가 무엇을 말하건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노란색의 사막은 부드럽고 아늑하고 고요해 보였다.


생명의 표시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시선이 미치는 어디에나 메마른 평원과 금속판처럼
반짝거리는 석편과 뒹굴고 있는 자갈뿐.
하늘과 땅 사이에 자갈의 공간만이 까마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다만 자갈의 역사가 있을 뿐 인간의 삶과 꿈과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없는 땅.
우리는 온통 광물질로 뒤덮힌 이상한 혹성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 권현숙의 소설, 『인샬라』 중에서 -

나는 창에 머리를 붙이고 오래도록 내다 보았다.
평소 나는 통로 쪽 좌석을 선호하는데 브뤼셀에서 출발할 때 창가 쪽을 원했던 것은 바로 사하라 때문이었다.
고개를 거두다가 우연히 옆 좌석 (카메룬에 산다는) 중년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랍다는 표정을 짓자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YAH, YAH! SAHARA......" 
마음씨 좋아 보이는 여인은 웃음을 지으며 사하라사막이 얼마나 큰 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사람이 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여러 날을 사막에서 헤매며 물도 떨어져 목이 타는
극한 상황에서 마침내 그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는 유목민을 만났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는 너무 기뻐 펄쩍 뛰며 유목민에게 물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오아시스까지 얼마나 가야합니까?"
그러자 유목민은 태연한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곧장 가다가 다음주 금요일쯤에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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