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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지난 여행기 - 2003필리핀출장1

by 장돌뱅이. 2017. 9. 7.

1. 출장빼기

2003년 1월 말, 설날 직전에 3박4일로 필리핀의 마닐라와 세부 출장을 다녀왔다.

회사에 제출하는 출장 보고서의 공식적 내용을 뺀 - 이른바 '출장빼기'의 내용을 적어본다.


6년 전인가 나는 역시 출장으로 마닐라를 다녀온 적이 있다.

마닐라 외곽의 공장매입을 위한 사전 SURVEY가 출장의 목적이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낮동안은 온통 차를 타고 다녔다는 것과 미팅,
저녁엔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술자리뿐이었다.

모든 것이 사업 상대방이 마련한 일정과 자리라 나의 생각과 의지가 개입할 수 없었기에
내가 어느 길을 돌아다녔고,  어느 곳에서 술을 마셨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일의 내용을 뺀다면 꼭 그것이 마닐라를 다녀왔다고 할 수 없는,
일테면 방콕이나 자카르타였다고 해도 좋을, 그런 여행이었다.
모든 출장이 그렇긴 하지만.

그때 마지막 날 시간을 내어 잠시 가보았던, 스페인 통치의 흔적인 인트라무로스 INTRAMUROS의
담벼락이 지명과 함께 그런대로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곳이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내 의지로 찾아간 곳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그때 함께 간 일행이 택시 운전사에게 차안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꽁초만 밖으로 버리면 상관없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도 난다.


*위 사진 : 마닐라공항


그때의 미련이 남아서일까. 나는 이번 출장을 앞두고 다소 무리한 계획을 세워 보기도 했다.
2박의 마닐라 체제 기간 중 일이 빨리 끝나면 차를 빌려 팍상한 폭포 Pagsanjan Falls를 다녀올까
생각을 한 것이 그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운전수 로니 RONNIE M. LAUREL 에게 미리
국제전화를 걸어 마닐라에서 일이 끝나는 날 오후 팍상한 예약을 해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은 내 마음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다.
회의는 꼬리를 물 듯이 새로운 사안이 계속해서 생겨났고 예상시간을 훨씬 지나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회의가 끝나자 손님들과 저녁 약속시간까지 불과 서너 시간이 내게 자유롭게 주어졌을 뿐이었다.
시간 관계상 팍상한행은 불가능 했다.

대신에 나는 로니와 3시간 동안 마닐라를 돌아보기로 했다.
약속을 펑크 냈으므로 시간당 200페소로 로니의 수입은 보장을 해주어야 했다. 
로니에 대한 책임만 없었다면 마닐라 돌아보기는 구태여 로니와 동행할 필요가 없었다.
택시와 전철 그리고 지도만으로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먼저 마닐라만으로 향했다. 차는 출발한지 일분이 채 안되어 호텔 막 벗어난 마카티의 대로 한가운데서 펑크가 났다.
‘쏘리, 쏘리’를 연발하는 로니에게 괜찮다며 타이어를 갈아끼우는 것을 도와주다보니 스페어타이어의 상태도 별로
신뢰할만해 보이지 않았다. 타이어의 요철이 다 닳아 마치 어린 날 신던 검정고무신의 표면같은 상태였다.
폭포를 가지 못 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로 세 시간을 달릴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니
신(神)만이 알지 않겠느냐고 한다. 하긴! 달릴 수 없다면 또 어쩌겠는가.
그냥 그럴 거라고 믿고 타는 수 밖에.


2. 호세 리잘 JOSE RIZAL

로하스 대로 ROXAS BLVD.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왼편으로 공원같은 녹지를 넘어 마닐라만이 이어진다.

대로의 북쪽 끝부분 오른편으론 리잘공원 RIZAL PARK이 접해 있다.


필리핀 독립 영웅 호세 리잘의 기념비 앞에서 차를 세웠다.
마닐라에는 곳곳에 호세 리잘의 이름이 남아 있다. 기념탑은 1896년 12월30일 그가 35살의 젊은 나이로
스페인군에 의해 총살된 장소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필리핀인들에게 봉기를 부추겼다는 죄목으로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리잘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는 기념탑 앞에는 두 명의 군인이 미동도
없이 서서 필리핀인들의 호세 기잘에 대한 존경을 대신하고 있었다.

기념비 옆에는 다음과 같은 호세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I WISH TO SHOW THOSE WHO DENY US PATRIOTISM THAT WE KNOW HOW TO DIE FOR OUR DUTY
AND OUR CONVICTIONS. WHAT MATTERS DEATH IF ONE DIES FOR WHAT ONE LOVES,
FOR NATIVE LAND AND ADORED BEINGS?"
(나는 우리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우리의 신념과 해야 할 일을 위해 어떻게 희생해야 하는가를
우리가 잘 알고 있다는, 우리의 애국심을 보여주고자 한다. 한 인간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하여,
자신의 조국을 위하여,  사랑하는 동포를 위하여 죽을 수 있다면 죽음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세상의 어느 곳에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굽히지 않는 신념과 뜨거운 애정으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 민족과 나라를 위한 신의 배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의 행적은 한 사회가 스스로를 비쳐보는 거울이며 미래를 향한 희망의 불씨인 것이다.


그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산티아고 요새에는 리살의 기념관이 세워져 있었다.
감옥에서 처형장까지 가는 길을 따라 호세 리잘의 마지막 발걸음을 표시한 모양판이 붙여 있었다.
그의 발걸음에 나의 발을 포개며 따라가 보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걸어가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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