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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2002(2월)방콕2

by 장돌뱅이. 2017. 9. 14.

2. 왕궁과 왓아룬의 기억

'타 티엔(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왓아룬을 보고, 다시 강을 건너와
왓프라케오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왓포를 둘러보고 전통맛사지를 받는다.‘

몇해 전 처음 가족들과 함께 방콕을 갔을 때, 나는 첫날 아침의 여행코스를 그렇게 잡았다.
가족과는 처음이지만 출장으로는 이미 수십 차례 방콕을 가본 터라 별다른 문제가 있을 리 없는 통상적인 코스였다.
활기찬 챠오프라야의 아침 풍경을 느긋하게 즐기며 불어오는 강바람에 몸을 맡겼을 때만 해도 일정은 순조로웠다.

내가 처음 왓아룬에 찾았을 때는 꽤 높은 곳까지 올라서 툭 터진 시야로 방콕과 짜오프라야 강을 조망을 할 수 있었다.
하필 이번엔 왓아룬이 수리 중이라 내부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좀더 가까이에서
탑을 보고 옹색스러우나마 사진도 찍었지만 아쉬움은 풀리질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사원 주변을 천천히 걸어서 돌아보았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태국 춤을 출 때 입는 의상을 그려 입힌 사람 모형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얼굴 부분을 오려놓은 모형 말이다.
딸아이는 거기에 머리를 디밀었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에서 눈을 떼는 순간 누군가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돈을 요구했다.

“MONEY?... 무슨 MONEY????”

우리의 의아함에 사내는 말없이 모형의 발부분을 손으로 가르켰다.
거기에는 작고 희미한 글씨로 "사진 40바트"라고 쓰여 있었다.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지만 킥 웃음이 나왔다.
유머러스한 사기도 있나?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어딘가 어설프면서도 약아빠졌고, 괘씸한 듯 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이 드는 사기였다.


*그때 그 '문제의 사진'


다시 배를 타고 건너와 왓프라케오로 가려는데 이번엔 툭툭이들이 다가왔다.
오늘 왓프라케오는 문을 닫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기도시간이라 오후 두시 이후에 문을 연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유인하여 쇼핑을 강요하는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혼자라면 그런 제안을 무시하고 걸어갔을 것이다. 거리도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와 딸아이가 더위에 지칠까봐 한 툭툭이 아저씨와 흥정을 시작했다.
사원 문 앞에 까지만 가는 것으로. 그러나 그것도 옳은 판단이 아니었다.
툭툭이 아저씨는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 자신이 권하는 곳으로 가기를 주장하면서 방향을
왓프라케오에서 먼 곳으로 향했다. 부득불 
도중에 툭툭이를 세울 수 밖에 없었다.

툭툭이에 시달린 뒤 식구들도 걸어가기로 동의를 하였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방향을 반대로 잡아 
왓프라케오를 완전히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사원을 보기도 전에 식구들은 더위에 지쳐 기운이 빠져 버렸다.
그 뒤로 식구들은 왓프라케오를 생각하면 눈부신 탑이나 황금의 불상보다도 먼저 무더운 날씨와 지친 발걸음이 생각난다고 했다.
지친 몸으로 돌아보았어도 우리 가족은 사원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지만 좀 더 맑은 정신으로 사원을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또한 남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새삼스레 왓프라케오와 왕궁을 일정에 넣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좀 이른 시간에 가서 ‘맨 정신’으로 둘러본 왓프라케오을 보기 위해서.
태국 사원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단장은 부처님 나라의 현세 실현을 의미한다던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무슨 명목으로건 이렇게 화려한 건물과 탑과 조각상들이 한 곳에 집중되어 모여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여행객들의 몰려들어 다소 혼잡스러운 점을 빼면 누가 뭐래도 왓프라케오는 우리에겐 여전히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고즈넉한 우리의 산사와는 정반대의 다른 분위기였지만 그것이 또한 먼길을 떠나온 한 이유 아닌가.


*위 사진 : 왓아룬

수리가 끝난 왓아룬은 예전의 높이까지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단부에서 철문으로 막아 놓았다. 
좀 아쉬웠지만 사원 측의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이해했다.

다만 10년전 처음 왓아룬을 찾았을 때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던 한글경고판이 낯 부끄럽게도
사원 수리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당당하게(?) 붙어있었다.
혹 관람객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이를 제한하는데 우리의 이런 모습도 한 몫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더욱 수치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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