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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지난 여행기 - 2002(2월)방콕4

by 장돌뱅이. 2017. 9. 15.

4. 방콕 식당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만큼 또 즐거운 일이 있으랴.
음식 속에는 계절이 있고 자연이 있고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
음식은 인류 지혜의 역사라도 한다. 민중의 집단 창작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어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 더 나아가 복어매운탕에 미나리를 넣는 것이
일종의 정석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
을까?
한 그릇의 스프에도 여행지의 계절과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먹는 행위에도 문화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걸 생각하며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음식 앞에서 나는 단순한 어린 아이의 마음이 된다.
맛이 있을까? 없을까?

맛있는 음식의 향내가 입안에 퍼질 때면 나는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다소 터무니없는 과장같지만 사실 아내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맛없는 음식은 범죄행위라고 하는 ‘극언’에도 그 순간만큼은 동조를 하게 된다.
방콕은 '삶을 아름답게', 적어도 즐겁게 만드는 음식과 음식점이 무진장한 곳이다.


<SEAFOOD MARKET RESTAURANT>


*딸아이가 좋아하는 시푸드식당의 새우튀김과 과일-자주 먹다가 사진을 찍는다.


방콕에 가면 한번은 들리는 식당이 스쿰윗 쏘이24에 있는 SEAFOOD MARKET RESTAURANT 이다.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그래서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맛이 그걸 보완해준다.
거기에서 딸아이는 새우튀김으로, 아내는 야채 ‘팍붕볶음’으로 미각을 자극시켜 방콕에 왔다는
실감을 스스로 고조시키곤 한다.

나는 원래 ‘초대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나 이 식당만큼은 예외이다.
운동장만한 크기의 내부에 늘 손님들로 붐벼 차분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직접 음식 재료를 사서
조리 방법을 협의하게 만든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가족과 함께 해산물 진열대를 돌아보며 직접 장을 보는 재미가 솔쏠하다..

대형운동장만한 크기에 수천석은 됨직한 좌석이 매일 저녁 빈틈이 없이 손님들로 들어차는 걸 볼 수 있다.
식당의 유머러스한 캐치프레이즈!
"IF IT SWIMS, WE HAVE IT!"(헤엄치는 것은 다 있습니다.!)


<SEEFAR>

SEEFAR는 파란색을 뜻하는 태국말이라고 한다.
월텟에 갔을 때 들렸었다. 인터넷 정보를 따라 5층을 찾아봤으나 맨 가구점뿐이었다.
아내와 딸아이의 쇼핑, 아니 ‘백화점 답사’를 쫓아다니느라 허기지고 꼬인 다리를 후들거리며
5층을 다돌고나서야 경비에게 물어보니 6층에 있단다. 식당 시파는 옷으로 치면 정장이 아닌
캐쥬얼에 가까운 식당이었다. 식당 분위기는 산뜻했고 맛도 깔끔했다.


<COCA SUKI>
COCA SUKI는 MK SUKI와 태국 수끼 업계를 양분하는 유명 체인점이다. 
월텟 분점은 앞선 시파 식당과 같이 6층에 있었다. 수끼는 끓는 육수에 소고기, 해산물, 야채 등을
익혀 소스를 찍어 먹는 일종의 샤브샤브다. 나중에 남은 국물에 밥을 넣고 죽도 끓여 먹는 것도 맛있다.
방콕엔 내가 지갑 상태를 걱정하지 않고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수끼 식당도 그런 곳 중의에 하나이다.
“여기선 마음대로 먹어.”하며 탁자 위로 가득 시켜도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식당은 아니지만 오기 전에 들른 패브릭 용품점 나라야(NARAYA)도 그런 곳이다.
“이 안에선 마음대로 다 골라!”하며 가장으로서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곳.
쇼핑백이 빵빵하도록 담아도 50불이 넘지 않는다.


<LE DALAT>
LE DALAT은 방콕의 유명 베트남 음식점이다.
이전 여행할 때 가본 곳이라 색다른 경험을 위해서도 다른 곳을 계획했지만 딸아이 생각은 달랐다.
검증된 맛있는 음식을 놔두고 헤맬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주장이었다.
어떤 이유로 갔건 LE DALAT은 손님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LE DALAT은 무엇보다 분위기가 정갈하고 아늑하다.
우리는 항상 낮에만 이 식당을 경험했는데 밤에는 식탁 위에 작은 촛불이라도 켜둔다면
더욱 운치 있는 장소가 될 것 같다. 베트남 음식을 잘 몰라도 된다.
사진과 함께 나오는 메뉴에서 골라잡으면 된다.


<LORD JIM'S>
오리엔탈 호텔의 외관은 세계 최고의 호텔이라는 세간의 평과 다소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다.
그러나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그 안의 시설을 이용해보면 호텔 직원들의 손님 응접태도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질적인 인프라만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이곳에도 들어맞는 말이 된다.

챠오프라야강이 내려다 보이는 식당 로드짐스(LORD JIM'S)은 원래는 시푸드전문이라고 하나
점심때는 부페를 제공한다. 가짓수가 많은 부페의 음식을 개별적으로 평하기는 좀 힘들다.
전체적으로 해산물에 중심이 맞추어진 음식들은 모두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강물을 내려다 보는 밝은 분위기도 그랬다.


<CELADON>
수코타이 호텔의 
CELADON에서는 저녁을 했다.
CELADON은 호텔의 연못 위에 지어진 분위기있는 태국 식당이다.
종업원의 깍듯하고 살가운 친절함과 잔잔한 실내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CELADON하면 음식에 대한 기억보다 식당 분위기가 먼저 떠오른다.

음식을 먹는 중에 아내가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방콕에서 사먹는, 당신 말을 따르자면 이 '거창한' ‘인류지혜의 역사’와
‘민중의 집단 창작물’인, 밥 한그릇을 내가 좋아하는 또 한 가지 이유를 알아?”
“...???... 왜?...”
“먹고나서 설거지를 안해도 되니까.”
아내는 늘 나보다 고수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호텔 내부를 거닐어 보았다. 치장이 세련되고 고상해 보였다.
반바지 차림 때문에 BAR의 출입은 정중한 거절을 받았다.
식당 출입이 되기에 그곳도 당연히 되는 것으로 알고 간 것이 실수였다.
드레스코드! 격식 있는 장소에 간다면 사전에 체크해두어야 할 필수 항목이다.

베낭여행자의 거리 까오산이 방콕의 일부라면 수코타이나 오리엔탈 같은 특급호텔도 방콕의 일부이다.
어차피 일상을 떠난 여행이라면 ‘가난’과 ‘궁핍’에 대한 경험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지역을 대표할만한 호사스러움에 대한 일별도 여행에서만 시도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것은 사치와 낭비에 대한 동경 때문이 아니라 여행과 여행지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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