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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2017.10. 방콕(끝) - 이런저런 방콕

by 장돌뱅이. 2017. 11. 13.

1.82년생 김지영



딸아이가 방콕 가면서 읽어보라고 건네준 책
장편이라기엔 짧고, 중편이라기엔 좀 긴 분량이다
출발일 짐을 싸놓고 읽기 시작해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들여다보니 공항 라운지에 들어선 지 오래지 않아 끝낼 수 있었다.
이어받은 아내는 방콕으로 가는 기내에서 간단히 읽기를 마쳤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는, ‘퇴근이 출근인 딸아이가 비슷한 연배인 
주인공의 삶과 생각에 깊은 공감을 하며 우리에게도 권했으리라.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성씨는 김 씨이며 82년에 태어난 여성 중엔 '지영'이란 이름이 가장 많다고 한다.
따라서 김지영은 우리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이름이겠다.
소설은 흔한김지영이 삶과 생활 전반에서 부딪히는 '흔한' 문제들을 여성의 시각에서 개론처럼 드러낸다.
가정에서부터 사회에까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예외적인 비주류의
존재로 차별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
소설적 완성도를 차분히 논하기에 앞서 그 문제들의 해결이 화급하고 절실하다고 82년생 김지영은 말하고 있다.


손목이 아픈 지영을 진찰하는 의사의 태도가 많은 것을 대변한다.

손목 많이 쓰지 말고 잘 쉬어. 어쩔 수 없지 뭐.”
애 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손목을 안 쓸 수가 없어요.”
김지영 씨가 푸념하듯 낮게 말하자 할아버지 의사는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이에 대한 김지영의 생각은 남성으로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를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여성 문제는 남성 중심의 역사가 만들어온 인류 최장 · 최후의 식민지문제이다.
그리고 모든 식민지 문제가 그렇듯 그것은 폭력의 문제이다
당연과 상식의, 때로는 모성애며 아내라는 도덕적 · 이데올로기적 허구의 외피를 씌운, 폭력.
감지가 어렵기 때문에 치유도 쉽지 않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살았다.


2.한식당 장원

 

장돌뱅이로 첫 해외 출장이 중국이었다면, 태국은 장돌뱅이로서 내가 거래처를 발굴하고 첫 수주를 한 나라이다
귀국 비행기 내내 몇 장의 계약서는 손가방을 꽉 채운 듯 묵직 듬직했고 그만큼 내 가슴도 꽉 채웠다
.
밖으로 보이는 흰 구름이 폭신한 양탄자 같아 뛰어내리면 그 위에서 마구 뛰어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방콕 외곽 공단에 공장을 둔 회사의, 그 감격적 첫 오더를 준 CEO는 일본인이었다
.
그가 열어준 기회를 발판으로 거래처를 확장하여 이후 나는 태국을 수십 차례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 김치 애호가였다. 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를 마치 무슨 애피타이저나 되는 양 서너 접시씩 비웠다.
바로 방콕의 한인 상가인 수쿰윗 플라자 1층에 있는 식당 "장원"에서였다.
"장원"도 그가 처음으로 소개를 해준 곳이었다. 그도 지금은 나처럼 은퇴했다.

아침 산책을 하다가 "장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젊은 그 시절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아직 잠긴 문틈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듯했다. 
다음 여행에서는 한번 들려봐야겠다.


3. QUIT FOR KING!


역시 아침 산책 중 벤자키티 공원에서 돌아오는 도로변에서 본 광고판
.
금연 광고인 듯한데 "왕을 위해서 끊으라(QUIT FOR KING)"는 구호가 특이했다.
어떤 내력이 있을까 알려준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지만
태국 글자만으로 되어 있어 더는 알아낼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가 아닌 왕을 위해서라니.
정서적으로 이런 구호가 먹히는 게 태국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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