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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2017.10. 방콕4 - 태국왕

by 장돌뱅이. 2017. 11. 9.

IN REMEMBRANCE OF HIS MAJESTY KING BHUMIBOL ADULYADEI

20여년 전 태국에 첫 출장을 갔을 때 호텔 로비에 있는 한 사내의 커다란 초상을 보게 되었다.

호텔 직원에게 그가 누구인가 물었다. 왕이라고 했다.
"아! 킹 부미볼?" 내가 아는 척을 하며 묻자 그가,
"푸미폰. 푸미폰 야둔야데" 이라고 고쳐주었다.
(태국식 영어 표현의 어려움이다. 왜 '부미볼'이라고 쓰고 '푸미폰'이라고 읽는 것인지.)

부미볼이든 푸미폰이든 나는 태국왕이 초면임에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60년대 말 ~70년대 초 태국에서 해마다 열리던 킹스컵 축구대회 때문이었다.
이회택, 박이천, 김호, 김정남 등이 활약하던 우리 대표 청룡팀이 단골로 우승을 하던 그 대회.
우승한 청룡팀 주장에게 우승컵을 건네는 '부미볼' 이라는 이름을 (대충)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최초의 태국은 밧데리를 고무줄로 묶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킹스컵 축구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 속에 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상하(常夏)의 나라, 태국의 수도 방콕입니다. ......
왼쪽 가슴에 태극 마크도 선명한 우리 선수들.....대한의 건아......청룡팀......"
TV가 흔치 않던 시절이고 위성 중계 방송이라고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 중계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라디오로 중계되던 축구중계는 얼마나 가슴 조이는 일이었던지.

사실 요즈음 들어보면 라디오로 하는 축구 중계는 아무리 아나운서가 잘 한다하더라도
도대체 공이 어디쯤에서 놀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저 승패나 알게 될 뿐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열한 명 대 열한 명이 겨루는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였다.

멀고 먼 나라, 우리 편이라곤 아무도 없는 황량한 곳에서 아닌 수천 수만명의 적군과
불굴의 정신력으로
고군분투하며 싸우는, 위대한 전사의 모습을 상상하며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더구나 중계방송에 따르면
상대방은 반칙만 일삼고 심판과 관중까지 합세
해 정정당당하기만 한 '우리의 대한 건아'들을 궁지에 몰아 넣고
있었기에 아나운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또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슈우우웃"하며 가파르게 솟구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정점에서 잠시 뜸을 들이는
그 짧은 순간에
나 역시 조바심치며 숨이 턱에 닿았다가 "꼬오오ㄹ인"하는 소리로 이어지기라도
하면 이불을 박차고
함성을 지르다 "이제 그만 자라"하는 안방 어른들의 꾸중을 듣기도 했다.
모든 상황을 청각을 통해서만 전달해야
했으니 아나운서는 무엇인가 끝없이 말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때 과장된 중계방송으로 인기를 끌었던
아나운서 이모씨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씨는
상대방이 슛한 것은 아무리 잘했어도 '어림없는 뽈'이고
우리 편 슛은 무조건 '앗깝습니다'였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나중엔 국내에서 전국체전 중계를 할 때에도 버릇이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라는 멘트로 방송을 시작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고 한다.
                                                -장돌뱅이의 「1999년 방콕여행기」 중에서-



왕의 사진은 거래처의 사무실에도, 공장에도, 음식점에도, 거리 곳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왜?'
'대체 그가 누구인데?'

대답은 한결 같이 "우리의 왕이므로."였다.
처음에 난 솔직히 그것을 시대에 뒤쳐진 시민 의식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개명천지에 왕이라니!
더군다나 군사쿠테타가 빈번한 태국에서 왕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율부린너와 데보라커가 주연한 영화 「왕과나」(THE KING AND I)에서
우스꽝스럽던 태국왕의 모습 - 그것이 헐리우드의 왜곡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의 태국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므로 - 이 떠올려질 뿐이었다.

내 태국 주요 거래처의 구매 담당이었고 지금은 친구가 된 A는 태국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쭐라롱꼰대학교 줄신의 여성이었다.
그에게 배운 사람들은 다를까 기대하며? 태국왕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냉철하고 이성적인 그조차도 왕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골프장의 캐디나
호텔 벨보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과 남편도 그랬다.

푸미폰국왕의 건강 상태가 나빠졌을 때 다른 태국인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왕이 죽고나면 누가 왕이 되는 거냐? 듣자하니 왕자는 좀 망나니고 공주가 명석하다고 하던데....."
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왕이 아직 살아있는데 왕의 이후를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런 질문을 안 하는 게 좋다."    

알려져 있다시피 태국왕은 작년에 서거를 했다.
태국은 1년 동안 추모의 기간을 가졌고 얼마 전 10월 말에 장례를 치렀다.
우리 여행 기간이 국장 기간과 겹쳤기에 도처에서 왕을 추모하는 장식물과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세월호 리본과 비슷한 모양의  검은색 리본도 많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의미인지 왜 그런 모양인지는 모르겠다.)
왕궁은 10월 한달 동안 입장이 불허되었다.

70년간 태국의 왕위를 지켰던 푸미폰 국왕의 장례식은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간 진행된다.
다비식장인 사남 루엉 광장에만 30만 명의 인파가 운집하고, 전 세계 34개국의 지도자들과
왕족들이 참여하는 '세기의 장례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첫날은 국왕을 위한 기도회가 열리고, 둘째 날에는 푸미폰 국왕의 시신이 왕궁에서 장례식장
으로 운구되고 마하 와찌랄롱꼰 현 국왕 주재 아래 화장이 진행된다. 시신운구와 화장식 사이
에는 각종 문화 공연이 열린다. 셋째 날인 10월 27일에는 유골이 수습돼 왕궁으로 돌아간다.
이후 하루 동안 기도회가 열리고 마지막 날인 10월 29일 국왕의 유골이 2개의 사원에 안장
되면 장례식이 마무리된다. 현재 언론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장례식 예산으로 3억바트
(약 102억원)를 책정했으며 수천 명의 건축가와 예술가를 동원해 장례식장과 부대 시설을 건립했다.
                                                                                       -10월22일자 연합뉴스-

올해 초 방콕에 갔을 때 그곳 지인이 고무로 만든 밴드(팔찌)를 아내와 내게 하나씩 주었다.
검은색의 밴드에는 황금색으로 글이 새겨져 있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나는 푸미폰국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살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왕이 누구이고 태국과 태국인들을 위해 그가 한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태국인 친구들이, 내가 탔던 툭툭이 운전수가, 내가 잠을 자고 밥을 먹은 호텔과
식당의 직원이, 골프장의 캐디가, 그를 존경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학창시절 읽은 아래의 짧은 문장이  태국왕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이다.
예전 여행기에도 인용했던 것인데 참고로 다시 적어둔다.

1851년 불교승려로써 26년을 보낸 후에 왕위에 오른 몽쿠트왕, 즉 라마 4세가 (···) 통치할 때까지 왕의 신체는 
하도 신성해서 보통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거나 만질 수도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왕과 그 배우자의 몸은 신성
불가침이서 왕의 유람선이 가라 앉아서 죽음의 고통이 온다 할지라도 보통 사람은 익사로부터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 도움의 손을 내밀 수가 없게 되어있다. 유람선은 구명대로써 신호투창과 한 묶음의 야자 열매를 갖고 
다닌다. 야자 열매 구명대가 왕을 구조한다면 그것을 던진 사람은 은화 50량과 금 한 덩어리를 보상으로 받지만, 
만일 뱃사공이 손으로 왕을 끌어 올렸다면 그들은 처형당한다. 그러한 극단적인 신성은 더 이상 강요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미볼왕과 시리키트 왕비는 아직도 모든 사람이 왕의 출현에 부복하도록 요구하는 역사적 전통에 입각한 
존경과 외경적인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 그는 입헌 군주이지만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부미볼왕은 타이의 신왕(神王)
적 전통의 영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 1951년 대관식에서 그는 184년간 이어 내려온 CHAKKRI왕조의 혈통을 
이어 받고 제9대 왕이 되었다. 그 의식은
브라만적인 의례와 불교적 의식이 결합된 것이었고 그에게 자비와 보시와 
정의의 힘을 부여하였다. 그는 최고 
신성한 폐하, 최고의 권위자, 전능자, 라마경(卿), 왕국의 소유자, 신민(臣民)의 
주인, 샴의 통치자, 최고 후견인
이며 군주등의 칭호를 받고 있다. 
                                                                             - 불타의 새얼굴중에서 (JERROLD SCHECTER) -


*마지막 사진 2장은 시암파라곤의 국왕 추모 전시장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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