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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74 - 김사인의「바짝 붙어서다」

by 장돌뱅이. 2018. 2. 6.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골목길에서 자주 보게 되는, 헌 신문지와 종이 상자를 모으는,
졸아든 듯 작은 체구와 굽은 허리, 흰 머리의 고랑진 얼굴.

누군가 그들이 모으는 폐지의 가격이 국제 유가의 변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우리의 세상을 엮고 있는 어떤 촘촘한 그물망을 생각해 보았다.



겨울의 칼바람을 마주하며 밀차를 잡고 걸어야 하는 그들의 시린 발걸음이
세상의 법과 제도와 경제와 정치가 만든 그 촘촘한 그물의 한 매듭이라면
한결 가뿐하게 집으로 돌아갔을 한 젋은 금수저에게 주어진 성긴 매듭과
똑같은 씨줄과 날줄로 엮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매듭 사이의 아득한 거리는 상상으로도 가늠하기 힘들만큼 멀어 보인다.
입춘이지만 유난스레 추웠던 하루가 꼭 날씨 탓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씽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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