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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80 - 신미나의「여름휴가」

by 장돌뱅이. 2018. 7. 31.



어린이집에서 손자를 태우고 나오는데 차창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와! 비다!"
반가움에 소리쳤지만 손으로 세아릴 수 있을 만큼의 몇 방울 흔적만 남긴 채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매일 같이 더위 기록을 갈아치우는 여름이다.
계륵처럼 여겼던 20년 넘은 구식 에어컨이 올 여름엔 단연 최고의 동반자이자 살가운 보물이 되었다.
전기세 걱정을 하면서도 기특한 마음으로 쓰다듬 듯 자주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

더위는 밤에도 기세가 등등하다.
늦은 밤 아내와 치맥을 하러 집 근처 닭집 가는 잠깐 동안의 산책에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린다. 

맥주를 마시며 아내와 어디론가 떠나볼까 의논하다가 포기를 하고 그냥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한반도 전체를 가둔 탈출구 없는 더위에 이런저런 우울한 일들이 더해져 나들이 의욕을 가라앉힌 탓이다.



가지 못한 「여름휴가」를 시로 대신 한다.
시 속 가족과 이웃의 모습은 부산하면서도 흥겹다.
그때 떨어지는 난데없는 빗방울.
모처럼의 휴가를 완벽하게 하는 화룡점정으로 느껴진다. 


 불이 잘 안 붙네 형부는 번개탄 피우느라 눈이 맵고 오빠는 솥뚜껑 뒤집어 철수세미로 문지르고
고기 더 없냐 쌈장 어딨냐 돗자리 깔아라 상추 씻고 마늘 까고 기름장 내올 떄 핏물이 살짝 밸 때
뒤집어야 안 질기지 그럼 잘하는 사람이 굽든가 언니가 소리 나게 집게를 내려놓을 때 장모님도
얼른 드세요 차돌박이에서 기름 뚝뚝 떨어질 때 소주 없냐 글라스 내와라 아버지가 소리칠 때
이 집 잔치한댜 미희 엄마가 머릿수건으로 탑새기를 탁탁 털며 마당에 들어설 때

 달아오른 솥뚜껑 위로 치익 떨어지는 빗방울
 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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