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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81 - 김기택의「책 읽으며 졸기」

by 장돌뱅이. 2018. 8. 7.

손자 '친구'는 늘 졸음을 참는다. 낮에도 밤에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라는 졸릴 때의 눈꺼풀을 끝까지 버팅기며 들고(?) 있는다.
사투를 벌인 끝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서야 스르륵 투항하듯 잠이 든다.

딸아이가 손자의 그런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내왔다.
아내는 잘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친구가 자라 시험 공부할 때 보여주라고 해서 웃었다.

친구야
이제 졸음과 싸우지 말고 가만히 눈을 감아보렴.

편안함 속의 그 모습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거든.
세상의 평화가 깃든.
그리고 또 네가 일찍 자야 엄마·아빠가 간만에 치맥을 할 수 있거든^^.


잠이 깨는 순간마다
얼핏 책상 앞에서 졸고 있는 내가 보였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코고는 소리를 얼른 멈추고 있었다
소매로 입가의 침자국을 닦고 있었다
졸음을 쫓아내려고 머리를 흔들고
열심히 눈을 비비고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글자에 촛점을 맞춘 나는
더이상 졸지 않고 책에만 집중하였다
는 생각 속에서 허겁지겁 빠져나와
침 닦으며 눈 비비며 다시 잠 깨는 나를 보았다
이제야말로 깨어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머리통은 또 한쪽으로 꺽이어 있었다
분명히 멈추었다고 생각했던 코고는 소리를
다시 멈추고 있었다
부릅떴다는 생각 속에서 어느새 풀려버린 눈을
다시 번쩍 뜨고 있었다
또렷하게 보였던 글자들이
부랴부랴 허공 속에서 책 속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제 정말로 정신 차리자고 기지개를 하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본 다음
자세를 고치고 마음을 다잡아 글에 집중하였다
는 생각 속에서 깨어 침을 닦고 있는 나를
꺾인 고개를 얼른 세우고 있는 나를
굳게 붙어버린 눈을 뜨고 있는 나를
잠시 후 다시 보고야 말았다
책 보는 걸 아예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기다렸다는 듯 단내 나는 잠이 한꺼번에 밀려와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는 생각 하나가
잠 속에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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