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배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명절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아마 나이들어감에 대한 아쉬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겁니다.
추석빔으로 갈아입은 새 옷(요즈음 이런 풍속은 없어졌지만)과 맛있는 음식,
어른들로부터 받는 용돈의 추석이라면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아득한 추억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있을 수 없는 연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쨌거나 내게는 변함없이 즐거운 명절입니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어동육서, 좌포우혜, 두동미서, 내탕외과 등의
잘 익숙해지지 않는 말들을 되새겨가며 차례상을 차려 절을 하고
식구들과 가평 북한강변의 한 펜션으로 자리를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저물어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저마다 책을 읽고 퍼즐을 풀거나 컴퓨터를 하며
시간도 마음도 강물처럼 길게 풀어놓았습니다.
저녁 시간 강 건너 산위로 둥실 떠오르는 달을 보았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빌기보다는
보름달의 모습이 그렇듯
늘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지상에 안식이 깃드는 황혼녘이면
두 눈에 흐르는 강물들 모여 구만리 아득한 뱃길을 트고
깊으나 깊은 수심을 만들어 그리운 이름들 별빛으로 흔들리게 하고
끝끝내 못한 이야기들 자욱한 물안개로 피어오르는 북한강 기슭에서,
사랑하는 이여
내 생애 적셔줄 가장 큰 강물 또한
당신 두 눈에 흐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 고정희의 시, 「북한강 기슭에서」중에서-
(2006.10)
'여행과 사진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가리 계곡의 단풍길을 걷다. (2) | 2012.04.20 |
---|---|
추석 연휴 보내기 2 (0) | 2012.04.20 |
안면도에서의 하루 (0) | 2012.04.20 |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2) | 2012.04.18 |
이 땅의 무릉도원 (0) | 2012.04.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