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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아침가리 계곡의 단풍길을 걷다.

by 장돌뱅이. 2012. 4. 20.

아침가리를 다녀왔다.
해마다 봄 가을이면 거르지 않고 아침가리를 찾는 친구가
숙소와 음식 등 일정 전체를 준비했기에
신경 쓸 것 없이 몸만 다녀오면 되는,  미안할 정도로 편한 여행이었다.

앞선 두 번의 아침가리행이 있었지만 모두 봄철에 한 것이어서
가을철에 아침가리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내가 동행한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었다.
아내가 동행할 때까지 어느 지역에 대한 나의 여행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이것은 논리와는 상관없는 나만의 감성의 문제이다.

이상기후 탓에 아침가리의 올 단풍도 예년만 못하다고 했지만
이미 덕유산이나 도봉산의 단풍에 다소 실망을 했던 내게
아침가리의 단풍은 올 들어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가을 가뭄으로 계곡의 물이 줄어
바위와 돌이 수면 위로 드러나 있었다.
덕분에 다리를 적시며 계곡물을 가로 질러야 하는 수고로움은 피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편리함에 좋아했지만 이내 좀 싱거워졌다.
역시 아침가리는 찬 물에 무릎까지 적시며 물을 건너는 맛이 있어야 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이들까지 낀 십여 명의 대규모 ‘원정단’이었지만
아침가리의 정갈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침가리를 걷고 난 후 아내는 해묵은 숙제를 해치운 것처럼
개운하고 뿌듯해 했다.

 

뒷날 아침에 일어나니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안개에 잠긴 숲은 어제와는 또 다르게 신비로웠고 진동리의 아침 공기에는
청신한 기운이 스며있었다. 아내와 나는 이슬 머금은 수풀 사이를 걸어 내려가 
개울가에 서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감동이 반드시 가슴
쿵쾅거리는 커다란 일이나 놀라움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일요일 아침 우리가 서울로 돌아온 뒤 진동리에는 뜻밖의 폭우가 쏟아졌다.
숙소 앞 개울물이 삽시간에 불어나 그곳에 남아있던 일행은 물이 빠지기까지
이틀씩이나 고립되어 지내야 했다.
거센 빗줄기는 아침가리의 단풍도 거두어갔다고 한다.
하루 차이로 절정의 단풍을 볼 수 있었던 행운의 여행이었다.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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