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엔 한 시기마다 그 시기를 대표하는 유흥공간이 있었다.
60년대의 명동, 70년대의 종로, 80년대의 이태원, 90년대의 압구정동 등등.
21세기에는 어느 지역이 그 이름을 이어받았을까? 홍대 앞? 청담동? 모르겠다.
유흥공간이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각 지역마다 어떤 특성을 드러내며 특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내와 나는 60년대에는 아직 어렸고 80년대는 직장 문제로 둘 다 지방으로 갔으므로
아무래도 대학생 시절이었던 70년대에는 종로가 친숙했다.
아내와 처음 만난 곳도 종로였고 자주 만나는 곳도 종로였다.
봄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청승을 떨며 무교동 거리를 걷던 나는 문득 저 앞에
그녀가 걷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흠뻑 젖은 온몸이 바짝 말라왔다.
만일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웬일이야. 이런 우연에 나한테 술 한잔 안 사야 될 무슨 철학적 이유가 있을까?" 하는 식의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만은 그런 행동이 나오질 않았다. 왠지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버스정류장에서 멈추어섰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듯 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우연을 아는 척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 속으로 그런 갈등을 수없이 반복하며 서 있었다.
61번. 문득 그녀가 타는 버스 번호까지 생각이 났다. 버스가 오기 전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지극히 쉬운 일이 그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오래지 않아 버스가 왔고
그녀는 허망하게 떠나 버렸다. 버스정류장에는 그녀가 서 있던 자리만 텅 비어 남아 있었다.
(중략)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대학을 다녔지만 어떤 모임에 같이 가입해 있었기에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만나곤 했다.
모임이 끝나면 으레 이어지던 뒤풀이 술자리에서 나는 누구에게건 스스럼없이 행동하며 시끄러울 정도로 떠벌여대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녀가 함께 하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그녀를 대하면 기분 좋은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드디어 어느 날 나는, 그녀의 표현을 비릴자면, '세상에서 제일 멋없는 방식'으로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했다.
70년대 아내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나의 책 『아내와 함께 하는 국토여행』 중에서 -
무교동에서 지하철 역을 나와 아내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던 설렘의 시간,
가로수 나뭇가지 사이로 축복처럼 쏟아져 내리던 맑은 햇살과 푸른 하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던 다방 "아가페",
종로에는 왠지 조금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다방 "일번지",
어색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던 경양식집 "햇살",
가수 김정호가 운영하던 카페(?) "꽃잎", 무교동 낙지골목, 청진동 해장국집,
아내와 함께 듣던 프레디 아귤라의 노래 "아낙"이나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피아노 연주곡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뒤숭숭한 시국에 걸핏하면 경찰에게 가방 뒤짐까지 당해야 했던 세종문화회관 앞 큰길에까지.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볼 만한 장소나 흔적은 지금의 종로에서는 물론 거의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시인이자 영화 감독인 유하의 글을 빌면) 젊은 시절의 '한때'가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도,
추억은 그 '한때'가 남기고 유한성의 절실함 그 자체를 에너지로 삼아 더듬더듬 생명을 연장해 나간다.
이른바 '7080'이라는 복고풍의 소품들이나 노래들이 주는 아련함에 우리가 깊이 빠져드는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이태원은 젊은 시절의 기억엔 없는 곳이다.
미군 부대라는 단어가 주는 이질적인 선입감때문이었을까?
어쩌다 남산에 올라도 남쪽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80년대 대표 유흥지역이라지만 80년 대 통틀어 단 한번 회사 외국인 손님과 함께 가보았을 뿐이다.
그 이후 2천년 대에 들어서 인터넷 웹진에 글을 쓰기 위해 비로소 몇번 가보게 되었다.
이태원은 갈 때마다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다양한 인종을 볼 수 있다거나
외국 문자가 가득한 간판 때문만이 아니라 되짚어 볼 추억이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근처에서 한식 조리 공부를 하면서 자주 이태원을 지나게 된다.
생활(주거) 반경 내의 지역에 충실하기 - 아내와 세운 여행의(?) 원칙이다.
라이너스바베큐는 텔레비젼 방송에도 나와 인기를 얻고 있는 음식점이다.
아내와 나는 중간 정도의 평점을 주었지만 실내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이태원엔 미로처럼 골목길이 많다.
좁은 골목의 끝까지 상권이 파고들어 있지만 대로보다는 그래도 아기자기한 정겨움이 남아있다.
수평선과 지평선을 뺀 세상의 모든 자연적인 것은 곡선이다.
생명체 중에 직선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사람들은 휘어진 길을 직선으로 펴고 좁은 골목길을 4차선 도로로 넓힌다.
그것을 우리는 개발이라거나 문명화라고 믿고 산다.
효율과 속도를 지향하는 문명은 우리를 세상에 살게 하지 않고 자동차나 빌딩 속에 가둔다.
걷기는 종종 시대에 뒤떨어진 취약한 행위가 된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세상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골목길은 큰길보다 느림을 보장한다.
아내와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 느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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