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알았다. 저 강물은 영원히 흐르고 흐를 것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거기에 있어 늘 똑같은 물이지만, 동시에 늘 새로운 물이라는 것을.
-헤르만 헷세, 『싯다르타』에서-
아내와 서울숲을 걸었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풀숲 사이에 스멀거리던 어둠의 잔해들이 강물 위로 풀어지고 있었다.
한 여름이지만 새벽 공기는 시원했다.
세상의 모든 시간과 장소는 처음이다.
여러번 걸은 적이 있는 서울숲이라 해도 우리는 생에 두 번 같은 시간과 장소에 서있을 수 없다.
강물이 "언제나 거기 있어 똑같은 물이지만 동시에 늘 새로운 물'이듯이.
아내는 문득 지난 봄 세상을 떠난 사람과 언젠가 이 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그가 했던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럴 때 아내를 위로할 적절한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떤 에스키모 인들은 화가 나면 어딘가를 향해 직선으로 걸어가며 감정을 풀어낸다고 한다.
화가 풀린 지점을 지팡이로 표시하여 분노의 강도나 지속된 시간을 기록한다고 하던가.
아내도 걸음걸음 슬픔의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내어 강물에 흘려보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있는 사람들에겐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 엄숙하게 흘러오지 않던가.
마침내 아침의 첫 햇살이 숲에 퍼졌다. 나뭇잎에 떨어진 햇살은 싱싱하게 빛났다.
나뭇잎들은 아우성을 치며 몸을 흔들었고 줄지어 선 나무들에선 바람이 일었다.
우리는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잠시 뭉클했던 아내의 어깨가 잦아들었다. 나는 말없이 아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서울숲을 갈 때마다 들리는 콩나물국밥 집.
고맙게 이른 아침에도 문을 열었다. 따끈한 국물이 빈속으로 편안하게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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