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속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소매 긴 김에 춤춘다."
서울 간 김에 남산 가고 시장 간 김에 오뎅 사먹듯
어젠 잠실 간 김에 아내와 올림픽공원엘 갔다.
그리고 걸었다.
걷기는 아내와 나의 일상이다.
별일 없어서 걷지만 일단 걷기 시작하면 시공간은 늘 특별하게 변화한다.
말하기, 침묵하기, 공상하기, 구름 쳐다보기. 바람 느껴보기 등등.
우리 스스로에게나 늘 그 자리에 있어온 예사로운 것들을 향해 마음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하철8호선 잠실에서 아내와 만나 한 정거장을 가니 몽촌토성역이다.
출구가 계단 끝에서 하늘을 향해 시원스레 열려 있다.
저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무엇이 있을까? 기대감이 차오른다.
익히 알고 있는 풍경임에도.
누구 못지 않은 스포츠 팬으로 자처하면서도 나는 그 해 올림픽에 대해 큰 기억은 없다.
스포츠의 감동을 편안하게 느끼기에는 당시의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개회식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의 모습과 육상선수 그리피스조이너의 화려한 복장, 그리고 배구(?) 경기에선가
미국과 당시 소련이 맞붙었을 때 관중들이 뜻밖에 소련을 응원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들이 기억에 있다.
개회식에서 성화 채화시 그곳에 있던 비들기들이 불에 타 죽은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올림픽 유치와 개최를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당시 권력의 과시욕 때문인지
아니면 선조들이 이곳에 토성을 쌓은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후자가 당연한 이유이겠으나)
서울 강남에 이렇게 넓은 면적의 숲이 남아 있는 것은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여름 햇살이 강렬했지만 길이 평탄하고 바람이 시원하여 걷기에 무리가 없었다.
눈을 두는 곳마다 초록이 지천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한 친구가 "그림에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디테일"이라고 어려운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디든 걷다 보면 가끔씩 그 말이 떠오른다.
그림은 모르겠지만 한 장소를 가장 '디테일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걷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몽촌토성은 88올림픽을 위한 체육시설 건립지로 예정되면서 수 차례의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유물과 유적이 출토되었다. (지금도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인 듯 했다.)
하지만 몽촌토성의 실체에 관해서 확신할 수 있는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한성 백제시대의 최고지배층이 거주한 왕성이다 아니다 등등의 여러 학설이 있지만
지금으로선 "지정학적인 위치나 그 규모와 축조 방법, 내부 시설물, 출토 유물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백제 초기 한성시대를 대표하는 중심적 성곽" 정도의 규정이 적절하다고 한다.
몽촌토성길을 걷다 보면 보이는 목책.
정겨운 울타리쯤으로 보이지만 원래 목적은 성곽을 보호하기 위한 설치물이라고 한다.
목책처럼 몽촌의 토성도 공격이니 방어이니 하는 살벓한 전투 용어와는 상관없이
그저 편안한 곡선의 언덕일 뿐이었다.
땅에선 창은 녹슬고 씨앗은 싹트는 게 자연의 순리겠다.
걸었으니 먹는 건 공식(?)이다.
올림픽공원 북문쪽 강동구청 맞은편에는 만두로 알려진 식당 "평양만두집"이 있다.
만두뿐만이 아니라 빈대떡과 김치말이국수의 맛도 괜찮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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