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 정릉을 모르지 않지만 직접 정릉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선 건 처음이다.
가는 길이 제법 복잡했다.
먼저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6번 출구를 나서면 아리랑 영화의 거리"가 이어진다.
1926년 일제강점기 조선 민중들의 비극적의 현실과 정서를 드러낸 영화 "아리랑"의
각본을 쓰고 감독과 주연까지 맡았던 춘사 나운규를 기념하기 위한 거리라고 한다.
영화 제목과 개봉일이 새겨진 보도를 밟으며 걸어가니 언덕길 정상 아리랑씨네센터
앞에 나운규 기념비가 서 있다.
계속 언덕길을 내려가면 왼편으로 아리랑골목시장이 있고.
시장을 통과하면 그 끝자락에 봉화묵집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 한분이 차분하고 정감있는 목소리로 맞아 주신다.
주방에도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두 분이서 식당을 운영하신다고.
먼저 배추전을 안주로 동동주 반 그릇을 마셨다.
메밀반죽에 노릇하게 구워낸 배추전이 구수했다.
묵집에 왔으니 묵(밥)은 필수.
거기에 칼국수를 더하여 아내와 나누어 먹었다.
할머니는 칼국수 속에 콩가루가 섞여 있어 쉽게 끊어진다고 말해주셨다.
경상도 안동식이라고 했다. 안동과 봉화는 같은 문화권이라던가.
묵밥과 칼국수 모두 정갈한 맛이었다.
여름이 되면 건진국시를 먹으러 다시 오자고 아내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정릉은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의 능이다. 태조 6년(1397)에 조성되었다.
태조는 조선 건국 전에 세상을 떠난 첫째 왕비 신의왕후에게서 6명의 아들을 두었고
계비인 신덕왕후에게서 2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계비의 둘째 아들 의안대군 방석이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훗날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은
이복 형제들에 의해 신덕왕후의 두 아들이 살해되는, '왕자의 난'의 불씨가 되었다.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권좌에 오른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째 아들 방원이었던) 태종은
원래 정동, 영국대사관 부근에 있었던 정릉을 지금의 위치로 축소·이장하였다.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깊이 패인 감정의 골이 메꿔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봉화묵집에서 정릉 입구까지는 500미터 정도가 된다.
능역으로 들어서면 지하철에서 내려 정릉까지 걸어오는 동안의 어수선한 난개발의
분위기가 씻긴 듯 사라지고 소슬한 바람과 정적이 가득한 겨울숲길이 시작된다.
얽힌 사연이나 문화적 가치,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에 앞서 조선의 능은
적어도 울타리 밖의 소란스런 개발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당위적 논리를 가졌고
우리에겐 이 삭막한 도시에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숲길이라는 음덕을 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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