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 지역은 예전에 양질의 백토가 생산되고 땔감이 풍부한데다 한강과 경안천을
이용한 제품 수송이 편리하여 도자기 생산의 적지였다.
또한 아름다운 기품을 보여주는 조선 백자의 탄생지이기도 했다.
광주시의 경기도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백자에 담긴 삶과 죽음" 전시회를 보러 갔다.
1. 식당 "마당 넓은 집"
마침 점심 무렵이라 들어간 "마당 넓은 집"은 소백산 한우가 주 메뉴였다.
그런데 주메뉴보다 보조(?) 메뉴인 나물 반찬이 더 유명하다고 한다.
채식 선호의 아내에 맞춤이라 생각했더니 나물만은 팔지 않고 소고기를 주문해야 따라나온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나물을 먹기 위해 소고기를 주문해야 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예상 밖의 거한 점심이 되었다.
열다섯 가지가 넘는 종류의 나물이 나왔다.
나문재, 톳나물, 파무침, 곰취, 호박잎쌈, 가지나물, 명이나물, 오이지무침, 솔부추 등등.
나물 제철인 4월에는 더 많은 가짓수가 나온다고 한다. 나물은 종류에 따라 삶는 방법이 다르고,
양념이 다르고, 무치는 방법도 다르므로 손이 많이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나물이 모양새만
갖추기 위해 허투루 나오지 않아 아내와 바쁘게 젓가락을 놀리게 되었다.
소고기 맛도 좋았지만 자연스레 나물이 더 기억에 남게 되었다.
직원은 모든 종류의 장을 직접 담근 거라며 알려주었다. 특히 볶은 된장이 좋았는데, 아내는 내게
그 비법을 알아내어 집에서도 식탁에 올려달라고 명령 같은 부탁을 했다.
나물과 고기를 먹은 후 나오는 나물밥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메뉴였다.
기름기가 좀 느껴졌지만 여러가지 나물에 무쳐 주먹밥처럼 만든 밥을 된장찌개와 함께 먹는 맛은 독특했다.
2. "백자에 담긴 삶과 죽음"
조선시대에는 무덤에 그릇을 부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초기에는 생전에 사용하던 그릇을 부장하였다.
16세기 중엽부터는 사대부를 중심으로 유교적 상장례가 확대되면서 무덤의 격식이 갖추어졌다.
이에 따라 부장되는 그릇들도 무덤의 규모에 맞게 별도로 축소 제작하게 되었다.
부장 그릇의 크기는 달라졌지만 일생을 함께 했던 그릇과 함께 내세에서도 평온한 일상을 누리라는
기원의 의미에서는 동일했을 것이다. 망자(亡者)에 대한 위로와 기원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다시 해보게 되었다.
"백자에 담긴 삶과 죽음"은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의 분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기획전이다.
전시 부장품은 제기나 생활용기가 주종이었지만 집안 내력과 죽은 자의 생전의 행적 등을 기록한
도자 지석(誌石)도 있었다.
솔직히 일종의 미니어처인 명기(明器)와 부장품은 호기심 이상으로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대신 전시실의 출구에 붙어 있는 "에필로그"는 찬찬히 읽어보게 되었다.
백자는 조성왕조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조선인의 삶과 죽음 즉, 시공간을 초월한 삶의 그릇이었다.
예와 격식을 갖춘 품격, 그리고 내구성을 지닌 가장 친환경적인 소재, 그 특별함이 있기에 백자가
무덤에서 오래도록 사용되고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현대의 사후세계관과 도자관이 변화하여
백자는 더 이상 부장품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여전히 현대적 가치를 지닌 삶의 그릇으로 또 예술품으로
재창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쩌면 백자는 우리 삶에서 늘 사용되어 너무나 익숙한 그릇일지 모른다.
조선백자를 소중히 여겼던 선조들이 그랬듯이 우리만의 특별함이 있는 이 시대의 도자기를 고민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위 사진 : "백자에 담긴 삶과 죽음"의 전시품들(출처 경기도자박물관 홈페이지)
3. 백자 달항아리
광주 도자기의 상징은 역시 실물 백자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내와 박물관 내 다른 도자기 상설 전시실을 돌아보았다.
전시실이라기보다는 도자기 정보 안내실이라는 정도의 표현이 더 맞는 곳이었지만.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백자는 광주 금사리가마에서 만들었다는 달항아리이다.
달항아리는 커다란 대접을 두 개 만든 다음 이것을 잇대어 둥글게 만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달항아리에는 가운데 이은 자국이 있다.
달항아리의 형태가 완벽한 기하학적 원이 아니라 약간 기우뚱해진 이유이다.
그 자연스런 기형이 주는 넉넉한 형태미와 어진 선맛, 그리고 따뜻한 백색으로 달항아리는
조선 선비들의 고고한 지성과 서민의 질박함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도자기에 이런 정서를 표현한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조선 후기 북학파 학자였던 박제가는 "하나의 자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라의 만사가 모두 이를 닮는다"고 했다.
어떤 미술 작품보다 도자기는 그 시대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는 의미이겠다.
실제로 백자 달항아리가 만들어지던 18세기의 조선시대는 국가의 모든 제도와 문물이 안정을 찾고
문화적으로도 풍성해지는 시기였다.
백자 달항아리가 지닌 절정의 아름다움은 그런 바탕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위 사진 : 백자 달항아리(사진 재촬영)
4. 그릇을 사다
박물관을 나오는 길에 아내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릇 몇 개를 샀다. 내 손으로 고른 생애 첫 그릇이다.
조리공부를 하다보니 거기에 걸맞는 그릇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초기 아내에게 안에 담는 내용물이 중요하지 까짓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그릇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식의 망언을 한 적이 있다. 이젠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고 때로 내용을 규정할 수도
있다는데 동의를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이 탓일 것이다.
내가 그릇을 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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