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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발밤발밤 51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by 장돌뱅이. 2019. 8. 17.


*15층의 호림아트센터. 박물관은 그 옆에 있는 5층 건물이다.

강남구 신사동이란 분위기에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박물관이 하나있다.
호림(湖林) 윤장섭(尹章燮)씨가 기증한 유물과 기금을 바탕으로 개관을 한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이다.
본관은 관악구 신림동에 있으며 신사분관은 2009년에 열었다.

개성 출신인 윤장섭선생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개성박물관장을 지낸 고유섭의 특강을 듣고
문화재에 대한 열정을 키워 무려 1만5천여 점을 수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도자기류가 청자 1,100여 점과 백자 2,100여 점, 분청사기가 500여 점 등 4천 점에 달한다.
호림박물관을 도자기 박물관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이다.

올해는 신사분관이 개관한지 10주년이 되는 해로 그동안의 전시들의 하이라이트를 모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별들이 총총 떠있는 골목길 같은 입구를 들어서면 로비가 나오고 전시실은 2층에서 4층까지다. 



흔히 중국도자기는 형태의 다양하고 완벽함에, 일본도자기는 색채의 화사함과 장식성에 특징이 있다면
한국도자기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선과 수수하고 소박한 모습에 특징이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중국도자기는 보기에 좋고, 일본도자기는 사용하기에 좋지만,
한국도자기는 어루만지고 사랑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그릇 중에 도자기처럼 깨끗하고, 청결하고, 아름다운 그릇은 없다.
나무나 금속,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릇은 흙으로 빚고 유약을 발라 불로 구워낸 도자기와 견줄 수 없다.
생활용품이면서도 예술품인 도자기 - 고려 청자의 고상한 비취색, 수수한 모양과 색채의 분청사기, 
소박하고 자연스런 선의 백자 - 를 바라보는 시간은 언제나 그윽하다.   



그러나 우리의 도자기를 감상할 때마다 그리고 이름난 외국 도자기를 볼 때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아름다움을 보편화시키고 세계화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짙다.
독일의 마이센(MEISSEN), 헝가리의 헤렌드(HEREND), 덴마크의 로얄코펜하겐(ROYAL COPENHAGEN), 일본의 노리다케
(NORITAKE), 혹은 웻지우드(WEDGEWOOD), 로얄알버트(ROYALALBERT), 빌보(VILLEROY & BOCH), 등의 반열에 우리의
도자기 이름 하나 들어 있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문화와 예술은 생산자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데,
우리 도자기 문화의 부활을 위해 아내와 나같은 일반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호림박물관에서 사진으로 담은 몇 가지 도자기를 올려본다.
유리 보호막 안에 전시된 실물을 핸드폰으로 찍은 탓에 화질은 좋지 못하다.
더 좋은 사진은 박물관 홈페이지에 있다. 직접 현장에서 보는 실물이 최고겠지만.
부기된 설명은 전시장에 부착된 설명문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청자상감모란운학문귀면장식대호(고려 13세기) : 우직하게 큰 덩치의 항아리에 문양과 장식이 화려하다.



↑분청사기양각우문희준(조선15세기) : 제사 때 각종 물과 술을 담았던 제기



↑흔히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백자대호. 18세기 이후 경기도 광주 금사리와 분원가마에서 제작된
보름달처럼 둥근 형태의 항아리를 일컫는다. 따뜻한 순백의 색을 지니고 너그러운 형태미를 느끼게 한다.
조선시대 백자의 특징인 차연친화적인 심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듯한 넉넉함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기형의 항아리는 조선만이 가진 것으로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백자 철화 운룡문호(조선 17세기) : 철화백자는 철분이 많은 철사 안료로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자기에서 철화 기법은 고려에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유행하였다. 이 작품은 어깨와
몸통 부분의 전면에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의 모습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부드러운 유색과 자연스럽고 해학적인 문양이 잘 어울리는 항아리이다.



↑철화 청자 화문 매병(고려 12세기) : 철화청자란 태토 위에 산화철이 다량 함유된 철사를 사용하여
붓으로 문양을 그린 후청자유약을 시유하여 번조한 청자를 말한다. 이 작품은 입은 사선으로 벌어졌고
목은 긴 편이다. 몸통은 윗부분이 완만하게 부풀었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안쪽으로 휘어져 내려와
굽에 이른다. 어깨에는 국판문을 둘렀다. 몸통 세 곳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을 꾸몄다. 꽃은 기본적으로
붓으로 그렸으며 꽃과 잎의 세부를 다시 음각하여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당당한 형태와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문양이 돋보인다.



↑청자 철화 모란문 대반



↑청자음각연화문팔각방경병(고려12세기) : 단정한 기형과 섬세한 문양이 조화롭다.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고려 12세기 보물1451호) : 유려한 기형과 화려한 문,
   청초한 유색이 고려 귀족사회의 문화적 특징을 잘 드러낸다.



↑청자상감동채연당초용문병(고려 13세기, 보물 1022호) : 무게중심이 아래부분에 쏠려 있어 안정감을 준다.
   당당한 기형과 화려한 기법의 문양이 일품인 이 작품은 이 시기에 제작된 청자의 백미로 꼽힌다.



↑분청사기상감파어문병(조선 보물 1455호)



↑분청사기박지연어문평병(조선15세기, 국보179호) : 원반을 세워놓은 듯한 형태로 몸통이 풍만한 물병이다.
   문양이 서정적이면서도 깊고 그윽한 맛을 느끼게 하는조선 초기 박지 분청사기 가운데서도 절품이다.



분청사기철화초문편병(조선 15-16세기)



↑백자청화매죽문호(조선 15세기, 국보222호) : 어깨에서 팽배하다가 몸통과의 경계에서
   서서히 좁아드는 조선 초기 전형적인 항아리의
 형태이다.



↑백자 반합 (조선 16세기,보물 806호) : 풍만한 볼륨감에 굽이 높직하여 백자의 당당한 기품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백자를 통틀어 최고의 걸작품 중의 하나이다.



↑백자대접 (조선 16세기) ; 입지름 21cm. 백자막사발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초기 백자의 명품이다.
   형태에 양감이 넘치면서도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듯 구연부가 밖으로 외반(外反
)되어 있다.



↑백자주자(조선16세기, 국보281)



↑백자태호 내외호 (조선15세기) : 아기의 탯줄을 보관하는 태항아리이다. 왕가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태를 즉시
   작은 내호에 넣어 산실 안에 미리 정해 놓은 길한 방향에
보관하였다.
   그 뒤 길일을 택해 태를 다시 보다 큰 외호에 옮겨 밀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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