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 무기질 중의 하나이다.
때문에 소금이 귀한 옛날에는 화폐로서의 기능도 했다.
로마에서는 군인이나 관리의 봉급을 소금으로 주기도 했다.
봉급을 의미하는 영어 "Salary"는 ‘병사에게 주는 소금돈’을 의미하는 라틴어 "Salarum"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금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조미료이자 음식의 맛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다.
감미료나 산미료와는 달리 소금 이외에는 대체할 다른 재료가 없어 독보적이다.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가 동일한 비율로 결합되어 있다.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 이외에도 다른 불순물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생리활성 물질이다.
정제 과정을 통해 이러한 불순물을 제거한 구운 소금이나 죽염등이 있지만 반드시 불순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만은 아니다. 김장 배추를 절일 때는 정제염이 아닌 천일염을 사용해야 쉽게 물러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젓갈, 염장 생선, 장아찌, 김치, 각종 장(醬)류에 이르기까지 소금을 사용하는 식품이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보건기구의 권장량 하루 평균 5g 정도의 소금 보다 2배가 넘는 양을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소금(혹은 나트륨)의 과다 섭취는 고혈압과 암 발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있다.
그런데 어제 들은 강의 <소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서 강사는 전혀 다른 내용을 이야기 했다.
소금의 적게 섭취하면 신체 균형 체계에 큰 문제를 야기시키며 지금의 기준치 보다 훨씬 더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나 FDA의 소금섭취 기준치는 너무 낮게 잡혀 있으며 이는 약 판매를 높이기 위한
제약 회사의 영업 활동에서 나온 결과라고 했다.
심지어 고혈압 환자라 해도 소금 섭취량을 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유투브 댓글에 그렇게 해서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증언들도 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어느 주장이 옳은지 판단할 지식이 없다. 헷갈리기만 한다.
소금을 작게 쓰라는 주장이 제약 회사의 의도라면 솔직히
소금을 많이 쓰라는 주장은 혹 소금 업계의 주장 아닐까 살짝 의심도 해본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주장엔 크게 관심이 없다. 건강에 무관심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마는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과도한 건강 타령은 피곤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저 내 입맛에 맞는 알맞은 간의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즐거운 음식과 나눔의 시간이 주는 향기로운 여운도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럴 때 필요한 한 마디.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가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중용(中庸)은 양 극단의 적당한 얼버무림이나 기계적인 평균치가 아니라 자유롭고 새로운 길이라 믿는다.
소금 때문에 중용까지 들먹이니 너무 거창해 보인다.
그냥 입맛 당기는 대로 씩씩하게 먹자.
↑2004년의 삼량염전
2004년 강화도 옆의 석모도를 여행하면서 그곳 삼량염전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도 퇴락해가는 모습이 역력하던 염전은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기여코 문을 닫았다고 한다.
정작 건강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것은 소금 섭취량 논쟁이 아닌 그 너머 더 근원적인 곳에 있을 것이다.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금을 만든다고 하지 않고 '소금이 온다'고 한다고 들었다.
소금이 '오는' 곳. 우리의 소금은 어디서 '오고' 있는 것인지.
석모도에서 보문사의 불상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민머루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삼량염전이었다.
드넓은 염전은 반 이상이 조업을 중단한 지 오래인 듯 퇴락한 모습이 역력했다. 값싼 외국산 소금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허물어진 옛 소금 창고 옆에 아직 소규모로나마 소금을 만들고 판매하는 곳이
남아 있었다. 소금은 짠 맛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맛을 맛으로 살아나게 하는 맛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런 맛의 근원을 우리는 남에게 맡겨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는 세계화된(?) 입맛을 지니게 된 것이다.
옛사람들은 소금에서 짠 맛과 함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맛과 멋은 분리될 수 없는 동질의 문화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토록 팍팍한 이유는 소금의 경우처럼 우리가 우리의 맛과 향기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
일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와 나는 다소 많다 싶을 정도의 소금을 샀다. '주위 사람과 나누어 먹지 뭐' 하는 핑계로.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애정을 갖게 되는 것도 나이 탓인지 모르겠다. 이런 사실을 알면 친구 녀석들은 또 나의
감상적인 한계를 들먹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랴. 이런 청승도 아내와 나의 삶인 것을.
- 졸저(拙著) 『아내와 함께 하는 국토여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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