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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45 - 함민복의「게를 먹다」

by 장돌뱅이. 2019. 10. 12.

*위 사진 : 꽃게탕과 양념꽃게장

꽃게라는 이름은 ‘곶해(串蟹)’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곶’은 꼬챙이의 옛말로 게의 등딱지 좌우에 있는 두 개의 날카로운 뿔을 의미한다. '곶해'가 곳게로 다시 꽃게로 바뀌었을 것이다.

한자어로는 '화살 시'를 써서 시해(矢蟹)라고도 한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두 눈 위에 한 치 남짓한 송곳 모양의 것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다. 또 "대체로 게는 모두 잘 달리나 헤엄은 치지 못하는데 이 게만은 부채 같은 다리로 물속에서 헤엄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영어 이름도 스위밍 크랩(swimming crab)이다.

꽃게는 봄엔 알이 가득 한 암게를 가을엔 살이 쫀득쫀득한 수게를 먹는다. 간장게장은 6월 암게로 담근다. 암게와 수게의 구분은 보통 하얀 배 쪽을 보고 한다. 암게는 배딱지가 둥글고 수게는 뾰족하다. 또 집게 다리가 길면 수게이고 약간 짧고 통통하면 암게이다. 꽃게를 고를 땐 우선 들어봐서 묵직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눌러봤을 때 단단하고 물이 나지 않아야 한다. 배가 희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고, 다리는 10개가 모두 붙어있는 것이 당연히 좋다.

노노스쿨의 조리시간에 양념게장과 꽃게탕을 만들었다.
양념게장은 먹기 좋게 자른 게를 간장과 청주에 절였다가 고춧가루, 설탕, 물엿, 다진마늘, 다진 생강 등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든다. 꽃게탕은 우린 멸치육수에 고추장과 된장을 풀고, 애호박, 양파, 대파, 청양고추, 버섯 등속을 넣고 끓이다가 갖은양념으로 마무리를 하면 된다. 마지막엔 팽이버섯과 쑥갓을 올려 모양과 맛을 더한다.꽃게 살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다. 글루탐산이 풍부하여 요리를 하면 감칠맛이 난다. 꽃게 껍데기에 암과 혈압, 콜레스테롤에 좋다는 키토산이 많다.

옛사람 우암 송시열은 게가 옆으로 비틀거리며 걷는 상놈이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이라는 '횡보공자'(橫步公子)나 용왕님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는 기개의 '횡행개사'(橫行介士)라는 게의 또 다른 이름은 듣지 못했나 보다. 그의 아집보다 아집에서 비롯된 짧은 입맛에 동정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탤런트 신구의 놀림 섞인 호령을 들어야 된다.

양념 꽃게장은 장모님의 대표 요리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 손맛은 아내에게도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이번 나의 게요리에 관심과 기대가 컸다. 저녁에 노노스쿨의 꽃게탕과 양념게장으로 상차림을 했다. 첫술을 뜬 아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조만간 딸과 사위와 함께 할 식사자리의 메뉴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잘 해보자고
잘 할 수 있다고
앞뒤로의 생활이 딸리면
좌우 옆으로라도 빨리 움직여야
먹고 살 수 있음을 가훈으로 한,
축구 골키퍼 같은, 게를 먹는 새벽

뼛속에 살을 숨기고 살아가는 게를
뼈에 살을 붙이고 살아가는 내가
파먹는다
뼛속에 살을 숨기고 살아가는 족속들은
왠지 슬프다는 생각에 젖어
그 슬픈 족속을 안주로
뼈에 쌀 한 가마니 무게의 살을 단
생활이 소주에 젖는다

살만 있는 공기여 물이여
뼈만 남아 있는 역사여
뼈가 없어 홀로 일어설 수 없으면 수목의 등줄기라도
잡고 일어서는 칡넝쿨이여
살의 분노 태풍이여
마음의 뼈를 발라낸 광란이여
허무에 독이 오른 물렁가재여
성기 끝을 벗어나는 뼈도 살도 아닌 정액의 두근거림이여

가위에 잘린 가벼운 게 다리들

빨며, 소주를 마신다

슬프게 살아 간이 저절로 배어 있는

- 함민복의 시, 「게를 먹다」-

밤일이라도 마친 것일까? 새벽에 게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시 속 풍경이 조금은 스산하다.
앞뒤가 아니면 '좌우 옆으로라도 빨리 움직여야 먹고 살 수 있음'과 '뼈에 쌀 한 가마니 무게의 살을 단 생활'에 삶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콧날 시큰한 슬픔이 소주에 섞여 육신으로 스며들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늘 신명 나는 가벼운 기분만으로 살 수 있으랴.
때론 처진 어깨로 무겁게 걸어야 하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사는 일은 버티는 일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수목의 등줄기라도 잡고 일어서는 칡넝쿨"처럼.

아내와 꽃게를 먹는 저녁은 오붓했다.
반드시 꽃게가 아니어도 그런 시간은 그리고 기억은 삶을 버팅기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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