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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46 - 정희성의「너를 부르마」

by 장돌뱅이. 2019. 10. 15.

*위 사진 :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발시킨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를 주제로 한 임옥상 화가의 「광장에, 서」

조국 법무부 장관이 '결국' 사퇴를 했다.
왜 오늘이었을까 하는 사퇴의 시점에 대한 배경이나 과정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나 그에게 더 버텨달라고 주문한다면 너무 혹독하고 잔인할 것도 같다.

정치공학에 앞서 사표 발표까지 따라온 젊은 세대에 대한 그의 사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우리 시대의 유일한 '은수저'이거나 '은수저의 대표'라도 된다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은수저'이기나 한 것일까?
그 문제만 가지고도 정작 사과를 해야 할 자들은 거만스레 고개를 쳐들고 있는데······.
그의 지나친 겸손이 애잔하다.
법무부장관이기에 앞서 개인 조국 씨에게 그가 견디고 있는 아픔에 위로를 보내고 싶다.

조국의 사퇴와 상관없이 검찰개혁은 진행되어야 한다는 원칙론이 위안이 되기엔 그의 등장에서 사퇴까지 우리 사회의 '적폐' 기득권이 보여준 반격은 집요하고 잔인했다.
정당과 검찰과 언론이 합심하여 조국이라는 진보의 상징에 대한 화력을 집중하고 초토화시킨 것이다.
35일의 장관 재직으로 그간의 적폐가 청산되었다고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결국 우리는 몇 해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그를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언제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또 다른 상징과 개혁을 과녁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온갖 이유를 만들어 쓸어버릴 것이다. 평범한 우리가 거기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숨쉬기 힘들어질 그때도 여전히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악몽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토요일 저녁 서초동으로 가 볼 생각이지만, 그것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지만, 우선은 좀 더 철저히 "증오할 것을 증오"해야겠다.
기억을 더듬어 불러야 할 것을 부르면서.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쉬는
공기여
시궁창에도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 이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자유여

- 정희성의 시, 「너를 부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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