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아침.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의 피로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
라스베가스로 향했다. 휴가철이라고 하지만 25일이
휴가 마지막 날인 사람들도 많아서인지
길은 별로 막히지 않았다.
엘에이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은
이제까지 내가 보아오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듬성듬성 자라는 키 작은 사막 식물을 제외하고
들과 산은 메마른 채 헐벗어 있었다.
마치 다른 혹성에라도 온 듯한
황량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그 속으로 도로는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악셀레이터를 밟아보아도 계기판의 바늘만 올라갈 뿐
속도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늘 제자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국적인 창밖의 풍경이 단조롭고 좀 지겹다고 느껴질 쯤
사막 속에 라스베가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라스베가스에 온 것이다.
미리 예약해둔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지노의 기계음이 봄날의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달려들었다.
저녁을 먹고 세 식구가 슬롯머신에 앉았다.
아내는 5백배를 맞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돈을 꽤 받았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배팅 금액이 1 센트였다.
오백배의 효력도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은 셋이서 '거금' 일불씩을 날리고 밤거리로 나왔다.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우리도 그 속에 섞여 흘러다녔다.
카지노,
화려한 불빛과 기묘한 구조의 호텔,
쇼핑, 온갖 쇼 등등이
온갖 나라의의 사람들이 라스베가스를 찾는 이유이리라.
조장된 소비와 오락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의 한 정점을 보는 듯한
몽롱함 속에서 문득 소설가 박완서씨의 글을 떠올리기도 했다.
"라스베가스는 누구나 알다시피 도박과 환락의 도시다. (...) 멀리서도
하늘이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보일 정도로 그 도시의 전기 불빛은
현란했다. 도시가 온통 깜박이고 돌고 춤추는 요상하고 휘황한 불빛으로
돼 있어서 정신이 돌 것 같았다. 얼이 빠진 김에 슬럿 머신에다가 이십오
센트를 있는 대로 처넣는 짓거리까지 해보았다.
다음날 아침 맨 정신으로 네온의 불빛 대신 햇빛에 드러난 이 도시를 바라
보는 느낌은 참혹했다. 도깨비에 홀렸다 깨어나도 이보다 더 황당하지는
않으리라. 아무리 호화 호텔도 외부에 얽히고 설킨 불 꺼진 네온의 잔해
때문에 폐허처럼 보였다. 도시 둘레는 풀 한 포기 안나는 사막이고 라스베
가스는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추악한 폐허에 불과했다. 어리둥절한 황당감이
가시자 공포감이 엄습했다. 우리가 (...) 자본주의의 악의 꽃만 들입다 수입
해다 정신없이 즐기다가 어느 날 문득 불빛이 사위어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사막화된 황무지 한 가운데 서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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