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에서는 숙소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수많은 오토바이의 질주와 만날 수밖에 없다.
지난 나의 베트남 여행기를 보니 호이안과 후에 여행을 빼곤 매번 오토바이에 대해 언급을 했다.
이번 여행기도 마찬가지다.
그럴 정도로 아내와 내게 오토바이는 매번 인상깊게 다가오는 베트남 혹은 호치민의 풍경이었나 보다.
본격적인 아침이 시작된 거리에서 우리를 맞은 것은 잠시도 끊어지지 않는 오토바이와 차량의 경음기 소리였다.
교통신호가 바뀔 때마다 차도에는 거대한 밀물처럼 끝없는 오토바이의 행렬이 지나갔다.
호수 길을 벗어나 구시가지의 뒷골목으로 들어가자 혼란스러움은 극에 달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는 점점 더 분주해져 갔다.
마치 비등점을 향해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병 속의 액체 같았다.
이날 아침에는 지구상에서 이 골목의 사람들이 가장 바쁜 것 같았다.
그러나 인간만큼 환경에 적응력이 높은 존재도 없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그 모든 하노이의 소음을 ‘하노이 오케스트라’ 라 부르며 점차 익숙해져 갔다.
-"2005년 하노이 여행기" 중에서 ( https://jangdolbange.tistory.com )-
호치민에서도 그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여전했다. 그때의 하노이만큼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오토바이는 여전히 차도 위에 군림하듯 소란스럽게 달리거나 자주 인도를 가로 막고 쉬고 있었다.
어떨 땐 인도라기 보다는 오토바이 주차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가끔씩 있는 신호등의 초록빛이나 횡단보도에서도 보행자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건너야 했다.
산책에서 돌아와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는 아직도 권리가 아니고 참고사항일 뿐이야."
오토바이는 교통 문제 이외에 종종 다른 문제로도 주의가 필요한 대상이 되는 것 같았다.
숙소의 방에 비치된 안내문에는 위와 같은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호텔 밖에서는 "핸드백은 어깨에 가로로 메고, 도로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전화기와 카메라를 지니라."
한마디로 오토바이 날치기를 주의하라는 이야기였다.
LONELY PLANET에도 'MOTORBIKE COWBOYS' 에 대한 같은 주의가 나와 있다.
AROUND THESE AREAS(벤탄시장, 여행자거리, 동코이지역, 강변도로 등), YOU'RE MORE LIKELY TO BE TARGETTED
BY MOTORBIKE 'COWBOYS' SPECIALISING IN BAG-, CAMERA-, LAPTOP- AND TABLET-SNATCHING
영국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189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
비숍여사는 제물포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모든 종류의 수하물들은 소위 '길'이라고 하는 것을 따라 서울로 가도록 되어 있다.
이런 실례의 말을 하는 것은 '길(road)'이라는 말에 합당한 길이 없기 때문이다."
- ISABELLA BIRD(MRS BISHOP)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 중에서-
숙소에서 '소위 '인도'라고 하는 것'을 따라 주변 식당을 하러 다니면서 머릿속에 자주 이 글이 떠올랐다.
비숖여사의 실례를 나도 흉내내자면 "인도(人道, SIDEWALK)라는 말에 합당한 인도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도는 주차된 오토바이로 막혀 있거나 식당이나 커피숖의 탁자와 의자들로 사이로 가늘게 이어져 있었다.
때문에 통행은 마치 장애물경기나 미로탈출 게임처럼 옹색스러웠다.
그러나 주의사항은 주의 사항일 뿐이다.
세상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여행자로서 지켜야 할 보편적인 주의 사항이 있다.
거기에 호치민에는 오토바이라는 특정 사항이 한 가지 더해진 것일 뿐이다.
몇 차례 베트남 여행에 오토바이와 관련한 어떤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행의 흥취가 깨질 정도로 특별히 움츠리거나 예민해하면서 지내지도 않았음에도 말이다.
나는 세상은 그때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늘 정신적·도덕적 진보를 이뤄나간다고 믿는다.
하물며 우리가 이루지 못한 독립이며 통일이란 위대한 역사를 자신의 힘으로 성취해낸 베트남 아닌가.
조만간 도로의 '악동'들이 사라지고 활기찬 '오토바이 오케스트라'의 울림만 남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우리는 호텔 직원이 소개해준 차를 타고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시내를 빠져 나오는 동안 젊은 운전기사는 연신 경음기를 눌러댔다.
재미삼아 몇 번을 누르나 횟수를 세어보니 채 3분이 지나지 않아 2백 번을 넘어섰다.
아예 경음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경음기에 대해 나는 한 가지 기억을 갖고 있다.
80년대 중반 싱가폴에서 온 회사손님과 도심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문득 그가 내게 물었다.
“한국사람들은 운전을 하며 왜 이렇게 경음기를 많이 누르는 거지?”
그의 물음 한 마디로 그때까지 조용하게만 느껴지던 거리가 갑자기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며 충격이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시끄러운 속에서 여지껏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니!
우리도 ‘하노이 오케스트라’와 같은 시절을 불과 얼마 전에 지나왔던 것이다.
공항이 가까워오면서 직선으로 뻗은 도로가 나오자 운전기사가 경음기를 누르는 횟수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렇듯 문제는 사람의 후진성이 아니라 환경의 후진성일 뿐이다.
-"2005년 하노이 여행기" 중에서 -
혹시나 하고 찾아 보았더니 LONELY PLANET은 서울에서도 오토바이를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MOTORISTS CAN BE IMPATIENT WITH PEDESTRIANS, SO TAKE EXTRA CARE WHEN CROSSING THE ROAD."
특히 골목길을 역주행으로 급하게 달려나온 오토바이에 운전 중인 차의 옆구리를 들이받히는 경험을 한 바 있는
아내와 나로서는 당연한 주의 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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