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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2020년 6월의 식탁

by 장돌뱅이. 2020. 7. 2.

어떤 밥을 어떻게 먹느냐는 어떤 생을 어떻게 영위하고 있는가와 같다.
밥이 재화의 굴레에 갇히고 함께 둘러앉는 밥상머리의 온기에서 멀어질 때 
생은 유효기간에 임박한 편의점 도시락을 허겁지겁 삼키는 행위처럼 위태로워진다.
텔레비젼과 인터넷 속에 밥의 정보는 넘치지만 그 넘침을 반성의 눈으로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6월에도 3대가 함께 하는 일요일 저녁식사를 가졌다.
코로나로 시작된 우리 가족의 이 의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재료를 사고 가다듬어 음식을 만드는, 식기에 담아 밥상 위에 올리는, 그리고 마침내 먹는 일까지, 
소박한 매 과정마다 흥겨운 수다와 싱싱한 기운이 맑은 샘물처럼 흘러나온다.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유순한 눈빛으로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자는 시인의 말.
술의 밥을 뜰 때마다 떠올려 보곤 했다.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김경미의 식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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