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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누란의 바람

by 장돌뱅이. 2020. 6. 30.



서역(西域)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넓게는 서부 아시아와 인도를 포함하고 좁게는 감숙성의 도시 돈황(敦煌)과 신장 위구르자치구역을 아우른다.
옛날 동서교역의 통로였던 실크로드의  동과 서가 만나는 접경이고, 이름만으로 험난함이 느껴지는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그리고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을 품은 지역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곳이기도 하다. 
나 역시 당장의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텔레비젼에서 이 지역이 나올 때면 관심을 가지고 보곤 했다.
최근에 출간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은 이 지역을 다루고 있다.
직접 가기에 멀고 번잡한 지역일수록 책으로 하는 간접 여행의 효용성은 두드러진다.
더군다나 그것이 명 문장가의 글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텔레비젼 화면을 볼 때와는 다른 깊이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대개 카라반들이 낙타를 몰고 구릉을 따라 사막을 건너가는 처연한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실크로드가 열리기 훨씬 전부터 타림분지에는 작은 오아시스 왕국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카라반의 상품 교역은 
오아시스 도시와 도시를 이어가며 행해졌다. 실크로드는 선(線)이 아니라 점(點)에서 점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
나라라고 하지만 인구수가 적으면 수백 명, 대개는 몇천 명, 많아야 1,2만 명, 가장 규모가 큰 나라가 8만 명  정도에 
이르는 작은 '성곽(城郭)국가'로 오아시스에서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 중에서-
  
그러나 기원 전 2세기, 실크로드가 열리면서 이 지역은 동서교역을 차지하기 위한 주변 세력들의 이권 다툼의 현장이 
되면서 오아시스 왕국들의 평화로운 삶은 깨지고 시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중의 한 나라, 누란(樓蘭)은 흉노와 한나라에게 각각 아들 하나씩을 인질로 보내는 고통을 겪은 끝에 5세기 말 멸망을 하였다. 
그후 누란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막 속에 묻혀 홀연히 사라진다. 어떤 기록 속에도 나오지 않던 누란이 역사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 서양의 탐험대들에 의해서였다. 

나는 이동순의 시에서 처음 누란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시를 읽고 누란이 어디지? 하는 생각에 자료를 뒤져보게 되었다.

흉노가 지나갔다 
돌궐의 무리가 낙타 몰고 지나갔다 
반초와 장건이 한나라 깃발 나부끼며 휩쓸다 갔다 
승려 법현이 지친 몸으로 당도했을 때 
이미 나라는 풍비박산 
그 서슬에 
무엇 하나 제대로 온전하게 살아남은 것 없었다 
엄청난 말발굽에 시달리고 짓밟힌 나라 
모래 속에 파묻혀 
신비한 모습 반쯤 드러내었던 
옛 누란의 공주 
그녀는 이 기막힌 사연 알고 있으리 
기둥만 남은 집터는 무엇을 해주는가 
나뭇조각에 쓴 편지 
거기서 읽는 슬픈 이야기는 아직도 가슴 저미는데 
사라진 왕국 빈 터 위로
저 바람은 불어가며 무어라 외치는가
-이동순의 「누란의 바람」-

시를 읽으며 구한말의 우리 역사를 떠올리기도 했던 것 같다.
위 시가 실린 시집에 있는 다른 시의 이런 구절도 기억난다.

저 들의 풀씨를 보라 
지난 봄 개울가에서 여문 씨앗들이 
바람에 날아가 이웃마을 산기슭 노랗게 물들인 
그 내력 유심히 살펴보라 
날아가자 
바람 타고 저 멀리 날아가자 
오늘도 구름과 바람은 
날더러 떠나라고 자꾸만 보챈다
-이동순의 「세상의 바람」 중에서-

떠나고 싶다. 
바람 타고 저 멀리 날아가고 싶다.
코로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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