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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영화『기쁜 우리 젊은 날』

by 장돌뱅이. 2020. 7. 8.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우리나라 옛 영화를 유튜브에 공개 중이다.
( 한국고전영화 Korean Classic Film : https://www.youtube.com/user/KoreanFilm )
어린 시절 천막극장 가마니 좌석에 앉아 콧날 시큰한 울음을 꾸역꾸역 참으며 보았던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에서부터
학창시절과 청년기를 보냈던 7080의 영화까지 대략 190 편의 영화가 올라있다.  

지나간 영화는 추억의 보고이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영화는 첨단의(그러나 자주 접할 수 없던) 볼거리였고
프로레슬러 김일의 박치기와 함께 아이들의 대화 속에 자주 오르내리던 주제였던 것이다.
리마스터링된 영화는 영화 자체는 물론, 영화를 보던 시절과 영화 속 옛 풍경까지 아내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단성사, 피카디리, 허리우드, 스카라, 국제, 국도, 명보, 중앙, 대한 등의 극장이 있던 종로와 을지로의 기억도 떠올리면서
아내와 틈이 나는 대로 보고 있는 중이다.


1987년에 개봉된 배창호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
비오는 날의 커피 잔처럼 두 손으로 감씨쥐고 싶은, 민(안성기)과 혜린(황신혜) 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이다.

혜린 : "제가 그렇게 좋으세요?"
영민 : "네"
혜린 : "어디가 그렇게 좋으세요?"
영민 : "전부 다요."

누구나 첫사랑의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평범한 말이 얼마나 절절한 진실인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영화로 노래로 소설로 시로 흔하다. 그래도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사랑이 만능은 아니지만 모든 처음과 끝이 일어나고 번지는, 인간의 붉고도 영원한 샘'이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말할 것도 없고,  『모래시계』의 재희와 태수, 『집으로 가는 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 관련 글 : https://jangdolbange.tistory.com/8 )

'기쁜 우리 젊은' 어느 날 나도 아내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서울 무교동의 길거리를 달려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설렘과 가로수 사이로 축복처럼 쏟아져 내리던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은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있다.
뒤꿈치에 생겨난 각질처럼 산다는 일이 건조하고 푸석푸석해질 때 부드러운 기름을 바르듯 그 달달함을 불러내고 싶다.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김선우, 「낙화,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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