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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다시 노노스쿨에 가다

by 장돌뱅이. 2020. 7. 24.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에는 여기저기서 실버세대를 겨냥한 유·무료의 교육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작년 노노(NO老)스쿨에서 음식과 식문화 전반에 관한 실기와 지식을 배웠다.

은퇴 후 받은 교육 중 이곳이 내겐 최고였다. 훌륭한 시설과 강사진, 그리고 짜임새 있는 커리큘럼을 볼 때 단연 그랬다. 은퇴하는 친구들에게 '백수의 앞치마는 세계평화를 부른다'고 주장해 왔던 터라 '세계 평화'(?)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나름 열심히 음식 공부에 매달렸던 시간이기도 했다.

졸업 후 처음으로 노노스쿨에 갔다. 졸업생과 올 교육생들이 만나는 날이었다. 복날을 맞아 1년 시차의 선후배가 함께 인근 지역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음식을 나누어주기 위함이었다. 조별로 나누어 흑미 삼계탕과 부추무침 등을 만들어 도시락을 채웠다.

어떤 밥을 어떻게 먹는가는 삶의 질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된다. 몇 해 전 '저녁이 있는 삶'이 사회적 화두가 된 적이 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식구들이 모여 저녁 식탁에 둘러앉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조차 담보되지 않는, 각박한 삶을 돌아보게 했던 아픈 질문이자 각성이었다.

혼밥혼술이 특별할 것 없는 세상이라지만 식사의 기본적 속성은 함께 하는 데 있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는 말에는 영양학적 칼로리의 모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과의 정서적 공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식구는 음식을 함께 먹기에 '식구(食口)'인 것이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의 '혼자 먹는 밥'.
자발적 선택이 아닌 그곳에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리가 준비한 한 끼의 식사가 그 그림자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다만 국물 한 숟가락을 뜨는 순간만큼이라도 누군가 희미하게나마 당신들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길 바랄 뿐이다.

기왕지사 만든 음식을 문 앞에 걸어두는 비대면 방식으로 전달한 것은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시절이 좋아지면 직접 전달만이 아니라 함께 식사를 나누는 방식도 생각해 볼만하리라.
문득 주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가만히 묻고 싶어진다.
'무얼 먹고 지냅니까?'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한 가지 궁금증이 오랫동안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앙상가 뒤편
칼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오래된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지금도 더운 군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칼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자그마한 탁자 위
어쩌다 흘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맵고 아린, 순간들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虛氣는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 박소란의 시, 「심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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