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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울산 시절 5. - 영화 『집으로 가는 길(THE ROAD HOME)』

by 장돌뱅이. 2005. 2. 15.

여러 가지 재료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진귀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대가라고 한다면 흔하디 흔한 일상의 재료를 가지고도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요리사도 대가일 것이다. 아내와 함께 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장이모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이란 중국 영화는 그 후자에 해당되는 경우다.

 시골학교.
새로 부임온 총각 선생님을 좋아하며 애태우는 청순한 시골 아가씨 디(장쯔이).
이런 설정과 이야기는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란 노래에서부터  얼마 전 보았던 전도연 이병헌 주연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 이르기까지 흔하다. 이런 상투적 소재를 가지고 장이모우 감독은 상큼한 사랑이야기 한 편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풍경이 아름답다. 언덕을 돌아가는 시골길과 푸른 언덕,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 사이로 하교하는 아이들, 단풍이 물든 숲, 눈 내리는 동구 밖······.
시골 아가씨와 선생의 감미로운 사랑의 눈맞춤을 따라 눈부시고 아늑한 화면이 영화 내내 계속된다.

영화의 원제는 『나의 부모(我的父亲母亲)』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눈 덮인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간다. 아버진 도시에서 시골마을로 교사로 전임을 와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평생을 그곳 마을에서 사셨다. 젊은 날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 이야기는 온 동네가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연애 이야기는 대부분이 그렇듯 싱그럽고 발랄하고 조금은 안타깝게 진행된다.

아버지 시신은 도시 병원에 안치되어 있어 장례를 위해 고향집으로 옮겨와야 하는데 어머니는 차량을 사용하자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꼭 도보로 운반하겠다고 한다.
아들도 어머니를 설득해 보지만 어머닌 요지부동이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 이웃마을에서 일당을 주고 사람을 사야 하고 날씨마저 추운 겨울인데도 어머닌 고집불통이다. 아버님에게 입힐 수의도 손수 짜겠다고 마을에 하나뿐인 낡은 베틀 고쳐서 밤새 작업을 한다. 어머닌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이 짠 옷을 입히고 두 사람의 사랑의 추억이 스며있는 길을 걸으며 고인에게 그 곳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마침내 아들도 어머니의 뜻을 따라 눈보라 치는 길을 걸어 아버지를 도보로 옮겨온다.

감독은 힘든 현재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아름답고 따뜻한 추억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속의 현재는 흑백으로 처리되고 과거에 대한 회상은 시종 화려한 색상의 화면으로 일관된다. 동화적인 분위기의 순수함을 강조하다 보니 시골 처녀 ‘디’가 너무 현실감이 떨어진 ‘천사표’로만 그려진 감은 있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란 원래 둘 사이의 진지함에 비해 남이 보기엔 약간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것 아닐까?

"한 사랑은 사랑하는 그가 준 핀을 읽어버리자 몇 날 며칠을 찾아 헤매는 것이며
한겨울의 벌판에서 그를 기다려도 춥지 않은 것이며
내가 만든 음식을 그가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기쁜 것이다.
그가 썼던 밥그릇 하나도 내게는 소중한 것이 사랑이며
그의 목소리가 세상 그 어느 소리보다도 아름답게 들리는 것 또한 사랑이다. “

계절은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가을비와 잿빛의 들판이 허허롭게 느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팔짱을 끼고 보아도 좋을 영화다.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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