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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울산 시절 2. -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by 장돌뱅이. 2005. 2. 15.

토요일 저녁.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와 영화 <<박하사탕>>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 《초록물고기》로 아내와 난 이창동 감독의 팬이 되었는데, 소설가 출신이라 그런지 구성과 줄거리가 짜임새 있고 탄탄했습니다. 이번 영화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들꽃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젊은이가 80년대라는 험난한 시대를 통과하면서 몸도 마음도 절름발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거꾸로 더듬어가는 영화였습니다. 그 절망의 시절에 절망하지 않고 뜨거운 '불'로 살았던 이 땅의 많은 젊은 모습들이 비껴간 것은 아쉬웠지만 아내와 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눈물이 핑 도는 애잔함으로 그 시대를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더 감정적으로 밀착되었던 것 같습니다.

유신, 긴급조치, 10.26, 비상계엄, 은밀히 김민기의 노래를 불러보던 학교 앞 막걸리 집······ 아내와 만남······ 쑥색 제복을 어색하게 걸친 육군 졸병으로 전방에 있었던 80년 5월······ 돌아가고 싶은 시대는 결코 아니라 해도······ 아카시아꽃 향기가 자욱하던 부대 앞 언덕길을 넘어 면회를 오던 아내의 싱그러운 옛 모습만은 선명히 기억합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늦은 시간, 아내와 난 맥주를 앞에 놓고 오래간만에 우리 젊은 날의 기억 위에 덮인 묵은 먼지들을 털어내며 그리 멀지 않은 옛 시간 속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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