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울산 시절 1. - 술 '자알' 마시는 여자와 못 마시는 남자

by 장돌뱅이. 2005. 2. 15.

83년부터 2001년 초까지 우리 가족은 울산에 살았습니다.
옛 디스켓을 뒤져보니 그 시절에 쓴 글이 몇 개 남아 있어 올려봅니다.
(아래 글은 아마 99년 정도에 쓴 것 같습니다.)

==========================================================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결혼 후 아내가 술을 마시게 된 것도 그런 변화 중의 하나이다.
연애 시절 아내는 소주건 맥주건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좌석에 앉아서도 음료수만 홀짝거렸다.

그러던 아내는 결혼 후 십여 년이 지나면서 어느덧 애주가가 되었다.
냉장고에 맥주 한두 병씩을 꼭꼭 챙겨두고 걸핏하면 “오늘 한잔 어때?” 하며 술을 하자고 한다.
내가 “별로 생각이 없는데······ 속이 좀 안 좋아서······ 할라 치면, 아내는 “야-, 세월이 가니 천하의 장돌뱅이도 별 수 없구나. 장돌뱅이가 술을 싫다고 하다니.” 하면서 혼자라도 술상을 차려다 마신다.

“이 여자가 이젠 완전히 술꾼이 다됐네?”
“누구 때문인데? 술 잘하는 남편이랑 십 년 넘어 산 덕분이지.”
아내는 자신이 술꾼이 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란다.
맞는 말이다.

더러 자신의 화려했던 음주 경력을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이 있는 데, 나 역시, 아내의 표현을 빌자면, ‘남들 평생 먹을 술을 이미 20대에 먹어 버린’ 경력을 갖고 있다. 이태백의 ‘애주불괴천‘(愛酒不愧天 - 술을 사랑하는 일은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을 앞세우며 강의실보다 학교 앞 막걸리 집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주머니 속은 늘 비어 안주는 주로 절은 김치뿐일 때가 많았는데, 누가 안주에 대한 불평을 할라치면 “안주? 야! 우리 몸속에 안주가 좀 많냐? 생간 있지, 곱창 있지, 헤파있지, 포장마차에서 파는 거 다 있어. 인간의 몸은 술만 부으면 되게 만들어진 것이야" 운운하는 치기 어린 소리를 해댔다.

보다 못한 아내가(당시엔 애인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튀김 몇 접시라도 올려놓는 날이 온전한 안주로 술을 먹는 날이었다. 친구들은 내게 ‘자금조달부장’이란 ‘엄청난’ 이름의 직책을 부여했다. 녀석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술좌석에 가급적 아내를 많이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빈대 같은 놈들 같으니라구 ······

아내는 술은 마시진 않았지만 술좌석이나 술잔을 받아 놓는 것은 거부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그런 식의 아내와 나만의 술자리가 (순전히 나 때문에) 많았는데, 어느 날부터 아내는 조금씩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급기야 애주가 경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시가 친척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사촌 형님이 아내에게 술을 권했다.
시집에서 아내는 종종 ‘두 얼굴의 여자’로 변한다.
“아니에요. 저 술 못해요.”
그때 아내의 ‘위선’은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딸아이의 ‘양심선언’으로 폭로되었다.
“아니에요. 우리 엄마 술 자알 먹어요.”

우리가 사는 아파트 주변의 주거환경에 대한 아내의 유일한 불만이 얼마 전 해소되었다.
드디어 골목 아주 가까운 곳에 호프집이 생긴 것이다.
서울처럼 세련된 분위기는 아니지만 낯익은 이웃들을 만날 수도 있어 그런대로 괜찮다.
집에서 입던 평상복 차림으로 갈 수 있고 밤늦은 시간에도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때문에 아내와 나는 더욱 좋아한다. 벌써 3번쯤 다녀왔는데 조만간 그 집의 주요 고객 명단에 오를 것 같다.

나는 얼마 전 병원 치료를 받았다.
젊은 날 ‘뱃속의 안주’를 너무 소진한 탓에 위벽이 헐었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내와의 술자리를 계속할 작정이다.
옛날 아내가 그랬듯이 음료수만 홀짝거리고 술잔을 받아놓기만 하더라도 말이다.

아내와 술좌석에서 나누는 두서없는 이야기들이 나는 편안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의 뜻을 더욱 크게 세상에 펼치는 사람이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점점 작아지는 가슴속의 꿈만큼 세상을 작게 울리며 산다.
그러나 그런들 어떠랴.
우리가 내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밤새 가슴 설레던 젊은 날의 추억이 있고
마치 H.O.T 때문에 세상을 사는 것 같지만 건강한 말괄량이 딸아이가 있는데.....

10월은 아내와 내가 결혼을 한 달이다.
아침이면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계절에도 옛날 아내와 시외버스를 타고 가보았던 한탄강 변의 해맑은 코스모스에 대한 기억처럼 언제나 아내의 가슴 한쪽을 튼튼하게 채울 수 있는 사내로 남고 싶다.

*2001년 첫 디카 사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