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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부침개가 익어가는 오후

by 장돌뱅이. 2020. 6. 24.


아침부터 장마비가 내렸다.

비오는 날과 전.  공식처럼 된 날씨와 음식의 조합이다.
문득 전과 부침개의 차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은 재료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밀가루와 달걀물을 씌워 지진 것을 말한다.
굴전·새우전·버섯전·고추전·호박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부침개는 재료의 형태를 무시하고 잘게 썰어 밀가루와 함께 반죽한 뒤 지진 것이다.
애호박을 채썰어 만든 호박부침개나 배추김치를 잘게 썰어 만든 김치부침개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전과 부침개를 통틀어 지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사전적인 구분일뿐 실제로는 전과 부침개는 혼용되어 쓰이는 것 같다.

냉장고 속에서 부침개 재료를 찾아보니 오이소박이를 만들고 남은 부추가 있었다.
여기에 건새우, 청양고추, 다진 마늘 등속을 넣고 멸치액젖을 부침가룰 반죽과 버무려 부추전을 만들었다.

인터넷에 많이 올라온 백종원 부추전을 흉내낸 것이다.

오후에는 지인이 보내온 감자로 감자전을 만들었다. 
팬에 올리고 잠시 딴짓을 하다가 뒤집는 적정 시간을 놓쳐 전이 아니라 감자튀김처럼 되었지만 대신에 바삭함을 얻었다.
아내는 내가 만든 음식에 늘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지만 전과 튀김에는 더욱 그렇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어 한다'는 극강의 튀김파이기 때문이다.

전을 먹고난 후 아내와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막걸리 빛 하늘을 내다 보았다. 
창을 스치는 빗소리가 그윽한 오후였다.
 

엎드렸다 돌아누우면
애틋한 그림자가 얼굴에 스며든다 

소금물에 절여지는 배추가 몸을 돌린다
비빔밥이 고추장을 뒤섞으며 본색을 드러낸다
이들이 색이 진해지고 있는 것은
뒤척임 때문이다
마음이 자주 뒤적일 때
가을처럼 깊어지기도 한다
잠자리에 누운 꿈도 뒤척댄다
그래야 어둠이 고르게 뭉치고
아침이 가벼워지듯이
뒤척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김치가 맛있어지고
비빔밥이 감칠맛 나고
그늘 속에서도 웃음꽃이 피어난 것은
뒤집고 뒤섞이고 뒤척인 덕분이다
삶의 위태로운 외다리를 건널 때
오그라들고 굳어지는 모든 것은
뒤척이지 못했던 것들이다 

노릇하게 익어가는 부침개가
바닥이 있을 것이라 굳게 믿으며
훌쩍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다시 한번 돌아눕는
그대의 눈이 깊어졌다

-휘수의 부침개가 익어가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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