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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기억

by 장돌뱅이. 2020. 10. 16.

코로나 사태 이후로 언택트(UNTACT)에 더하여 온택트(ONTACT)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얼마 전 글에 썼듯이 내가 온라인 강좌를 수강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 https://jangdolbange.tistory.com/2067?category=378310 )
앞으로도 매달 한두 가지의 강좌는 들어볼 생각이다.

9월에서 10월에 걸쳐서는 매주 1회  "NGO 해외활동"에 관한 강좌를 듣고 있다.
손자친구가 태어나 장기간의 해외 체류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지만 관심을 둔다는 의미로 수강 신청을 하였다.
최근에는 손자친구2까지 태어나 '함수'가  더욱 복잡해졌다.
하지만 누가 알랴. 삶의 변화는 느닷없이 오고 앞날은 알 수 없어 신비로운 법 아니던가.
"비비디 바비디 비비디바비디부!"
손자 친구와 함께 영화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술 주문을 외우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지만
가끔씩은 요술처럼 낯선 곳으로 순간이동하는 생활을 꿈꾸어 보기도 한다.

"NGO 해외활동" 강좌에서는 해외 체류와 자원봉사활동에 필요한 단편적인 정보나 세부적인 요령 대신에
좀 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내용을 다룬다.
'왜 가난한가?', '개발의 의미와 철학',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인도주의와 정의' 등등.
마치 대학교 때 서클 모임이나 MT, 아니면 학교 앞 막걸리집에서 다루던 주제 같다.
그래서인지 강의 시간이 끝나면 자주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기억을 들춰보게 된다.



*위 사진 : 70년대 하계농활에서

대학 신입생 시절 우연히
한 써클에 가입하여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주말에 어린이 보육시설(당시에는 고아원이라고 불렀다.)을 방문하여 원생들과 어울리고 학습 지도를 하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에게 재미와 유익함을 줄 수 있는 놀이와 학습 지도 방법을 찾아 다른 회원들과 나름으론 열심히 머리를 맞댔던 것 같다.
그러던 중 MT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 시민단체에서 온 강사로부터, 풋내기였던 내게 신선한 충격과 오랜 여운을 안겨 준,
요즈음 말로 하자면 '인생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고아원을 예쁘게 가꾸고 즐겁게 만들어 잘 운영는 사회가 반드시 좋은 사회인가요? 
고아원은 잘 되어야 하는 곳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하는 곳 아닐까요?"
그의 말에 회원들의 여러 반론이 쏟아졌다.
강사의 의견은 너무 원론적일 뿐 현실성이 없다. 고아원이 없는 시대와 나라가 있느냐,
미하지만 우리는 학생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분을 감당하는 것이라는 등등.
마침내 누군가 '고아원이 어떻게 없앨 수 있느냐?'고 반문을 했을 때 그가 말했다.
"어떻게 없애냐구요? 간단합니다. 고아가 없도록 하고 만약에 생기면 입양을 하면 됩니다."

그가 던진 질문의 파격에 비해 너무 엉터리 같은 답변이라 우리들은 '쳇 뭐야. 말장난이잖아' 하는 심정으로 웃었지만,
강사는 동정과 자선은 전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좌표와 방향을 설정하려는 치열한 노력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파편화된 선한 의지만으론 선한 결과를 담보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왜곡된 현실을 고착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세상이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숱한 '당연의 논리'와 '익명의 권위'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단순무식형의 나는 강사의 어려운 주장보다 '고아원은 잘 되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없어져야 한다'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결혼을 앞둔 애인(지금의 아내)에게 입양 문제를 진지하게 꺼내보았을 정도였다. 



*렘브란트 : "착한 사마리아인"


그와 비슷한
주장을 친구로부터도 들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그 사람이 가진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때려 반쯤 죽여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제사장 직급의 레위인도 모른 척 지나갔다.
그때 이교도이자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응급치료를 해주었다.
그리고 자기의 나귀에 그를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며 간호를 부탁한 후 길을 떠났다.
성경(루가10:30 - 36)에 나와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이다.

대학 시절 술자리에서 그 친구는 사마리아인 같은 동정과 자선, 일방적 베풀기만으론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혔다.
그곳에 강도가 없어지지 않는 한 피해자는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강도를 없애거나 강도를 막을 수 있는 경찰관을 배치하는 등의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우연히 만난
피해자 한 명에게만 호의를 베
풀고 떠나는 행위는 다분히 자기 위안의 도덕적 허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나중에 보니 비슷한 내용이 독일인 브라이덴슈타인(G.BREIDENSTEIN)이 쓴  『학생과 사회정의』란 책에 나와 있었다. 
 
세월이 지났다. 친구는 7080이란 '불의 시대'에 '강도'를 없애는 일에 투신했지만
나는 엉터리 사제처럼 다친 피해자도 못본 척 멀리 돌아가며 심하게 살았다.

'고아원을 없애기 위해' 자녀를 입양하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감은 듯 뜬 듯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

퇴직을 앞두고 아내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했다.
"무엇이든 외국인을 위한 일을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아내가 권했고 나도 동의를 했다.
직장생활 대부분을 해외 비즈니스로 보냈고 해외 주재도 10년 가까이 했으니 음으로 양으로
외국인들에게 받은 도움이 상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작년 가을부터 이주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커뮤니티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한국어 능력 시험을 대비하는 토픽(TOPIK)반과 일반 공부반이 있었고 나는 일반 공부반을 맡았다.  
학생들은 두 시간의 수업을 받기 위해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왕복 5시간을 걸리는 길을 오갔다. 
어쩌면 공부보다 따뜻하고 정감 있는 대화의 시간을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젖어보기도 했다.  
비대면 영상수업으로 바뀐 뒤로는 학생들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지만 
살가운 친밀감을 나누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가끔씩 임금체불이나 회사의 억압적 관리방식에 대한 고민과 아픔을 토로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예쁜 고아원'과 '착한 사마리아인'의 한계를 생각해보곤 한다.  

인간이 된다는 의미는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다. 이것은 그 세계를 객관적인 현실,
독립된 객체, 앎의 대상
으로 경험함을 말한다. 짐승은 현실 속에 매몰돼 있어 현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들은 단순한 접촉물일 따름이다. 그러나 사람은 세계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고 세계에 대하여 열려진 존재일
수 있으므로 관계의 존재로 드러난다. 짐승과는 달리 사람들은 세계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와 더불어 있다.

-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과 의식화(EDUCATION FOR CRITICAL CONSCIOUSNES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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