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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동등한 사랑

by 장돌뱅이. 2020. 10. 5.


*첫째와 둘째 손자 친구


집안 제사에 첫째 손자 친구를 데리고 갔다.

조카 손주들이 있어 함께 놀며 안아주었는데,
손자 친구가 다가와 사이에 끼어들며 한 마디를 던졌다.
"나도 할아버지가 안아주는 거 정말 좋아해."
시샘이 나서 나에 대한 '독점권'을 완곡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제까지 손자는 자기 이외에 내가 놀아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나와 만나면 자신도 다른 사람과 놀지 않았으므로 이해가 갈만한 일이었다. 
 
예전에 한 회사 동료가 아이의 돌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병원에서 태어나 처음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동생을 어린 형이 갑자기 이유없이 때리더라는 것이었다.
동료는 그것을 일종의 본능적인 '자기 영역 보호' 행위가 아닐까 추측했다.
아이는 그 이후 별일없이 잘 자라 지금은 성인이 되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둘째가 집으로 온 후 잠시 동안 아내와 나는 딸아이 집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와 내가 가면 첫째 손자 친구가 우리 하고만 놀려고 하므로,
동생과 가까이 하는 시간을 많이 주어보자는 어른들끼리의 배려였다.

그때 첫째 손자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이제 형아가 되었으니까 동생을 많이 보호하고 돌봐줘야겠네."
내가 말하자

"당연하지.  할아버진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손자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잠꼬대 같은 소리'라는 표현은 만화영화 "띠띠뽀"에 나오는 표현으로 첫째가 요즈음 자주 인용한다.)
실제로 첫째는 동생과 별문제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추석 연휴 동안에 아내와 나는 처음으로 둘째를 대면했다. 
코로나 때문에 출산 병원에서는 물론 산후조리원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내게 큰손자가 보는 앞에서는 둘째 손자에게 과도한 애정 표시를 삼가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여 나는 가끔씩 아주 짧은 시간만 둘째를 보고 주로 큰손자와 어울려 놀았다.

평소처럼 뒹굴며 노는 중에 첫째 친구가 내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동생과 나 중에) 누가 더 좋아?"
'독점권'이나 '영역 표시'를 드러내는 것일까?
"둘 다, 다 좋아. 하지만 너랑 오래 놀았으니 네가 더 좋지."
나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첫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리사랑이라지만 아직 둘째는 목도 가누지 못하는 영아라 울음 이외에 자기 의사 표현이 불가하여 
나는 일방적이고 본능적인 애틋함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해 첫째는 비비고 끌어안고 뒹군지 만4년이 넘은 터라 서로 쌓아온 살가움이 두터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의 대답이 즉흥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나의 동등한 사랑을 친구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인정 받을 수 있을까?
즐거운 고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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