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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꽃'만으로는

by 장돌뱅이. 2020. 11. 3.
* 오늘(11월3일) 아침 텔레비젼 화면 촬영

미국 대선이 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후 2시부터 시작된다.
모든 선거는 과열되기 십상이지만 특히 이번 미국 대선은 과열을 넘어 혼란스러워 보인다.
여느 때보다 사전 투표 열기가 높은 데다가(2016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전체 유권자의 70% 이상) 우편 투표의 경우 주에 따라 유효표 인정 기준일이 달라 개표 소요 시간과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많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가 끝난 후 오랫동안 집계를 허용하는 것은 'PHYSICALLY DANGEROUS'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후보자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게 되면 2000년 부시와 엘고어의 경우처럼 당선이 연방 대법원의 결정에 맡겨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사망한 후 곧바로 강경보수 성향의 후임을 지명하여 현재 대법원은 6:3으로 보수 진영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다. 코로나 사태에 흑백 갈등 요인까지 맞물려 선거 후 지지자들의 소요 사태가 증폭될 우려도 있는 것 같다. 뉴욕이나 LA의 상점들이 보호막을 설치하는 모습에서 선거가 이후 다가오는 먹구름의 공포가 느껴진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꽃이라고 흔히 말한다.
동시에 투표자로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과 소망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러나 4년에 한 번, A 아니면 B라는 양자택일의 문제에 '정답'을 고르는 행위만으로 소망이 현실로 바뀔 수 있을까?

*위 그림 : <히틀러 경례의 의미-작은 남자가 큰 선물을 요구한다>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 1923년. 모토-백만장자가 내 뒤에 있다!

회사일로 7년 간 살아본 내게 미국은 크고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였지만 결코 복지국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삶에 필수인 의료비가 상상을 초월했다. '맹장 수술에 천만 원이 든다'느니 '911(우리나라의 119) 한번 불렀다가 2000불을 냈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사실인 것 같았다. 한국보다 친절하고 여유로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회사에서 지불하는 비싼 의료보험료 덕분이었다.

의료비나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멕시코까지 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오바마케어 이후에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그 무렵 미국인의 25%가 의료보험 없이 지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두가 의료보험 민영화 이후에 생겨난 일이다. 이럴 때 민영화는 제도적 부조리와 자본과 권력의 밀착을, 간단히 자본의 위력을 표시하는 다른 말이다.

미국은 자본의 천국이다. 자본의 논리는 더 높은 이윤 추구가 생명이다.
이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허물어질 때 그것은 인간의 삶을 잠식한다. 소농과 가족농을 농토에서 밀어내고,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사회적 재화의 분배를 왜곡시킨다. 100개의 작은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을 10개의 큰 가게에서 사게 하고, 100가지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10개로 축소시킨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생산하지만 선진국 중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흑인의 연평균 수입은 백인보다 61% 낮으며, 이는 1880년 흑백 간 수입 차와 변함이 없다고 한다. 교외에 살면서 아이들을 축구연습에 데려다주는 '싸커 맘 Soccer mom'과 저임금 시간제 직장에 다니면서 패스트푸드로식사를 때워야 하는 '버거킹 맘 Burgerking mom' 사이의 벌어지는 간격을 정치는 방조하거나 조장했다.

레스터 서로우(Lester Thurow)라는 미국의 학자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의 실패』(1996)에서 "혁명이 일어났거나 또는 군사적으로 패배해서 점령당했다면 모르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미국처럼 지난 20년간 불평등이 심화된 나라는 역사상 없다"고 했다.

'20년간' 사람들은 열광하며 또는 진지하게, 마이클 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A와 B 즉, "널 엿먹이겠다고 엿먹이는 놈과 안 그런 척하면서 엿먹이는 놈"을 번갈아가며 뽑았다. 그는 유명 민주당 대통령이 실제적으로는 '사상 최고의 공화당 대통령 중의 한 명'이었다고 신랄하게 꼬집기도 했다.
"Bill Clinton was one of the best Republican Presidents we've ever had."
이럴 때 '그 나물에 그 밥', '도긴개긴'이라는 표현이 적당할까?

미국을 호텔에 비유하는 말이 있다.

국민은 주인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투숙객이다. 투숙객은 호텔의 경영에 간섭할 수 없다. 호텔의 목표는 이윤 창출이지 투숙객의 복지가 아니다. 호텔에서는 지불하는 돈에 따라 대우가 달라질 뿐이다.

'호텔'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분명한 건 투표는 꽃이지만 투표만으로는 현실이 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삼겹살의 불판'은 간단히 교체되기엔 생각보다 무겁고 견고하다.

일상의 "거리에서 결실을 맺지 않는 어떤 항의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저항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 보이는 그 순간부터 저항하라"는, 말이 이럴 때 필요할지 모르겠다.


더 중요한 점은 이것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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