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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69세』

by 장돌뱅이. 2020. 11. 5.


69세 심효정은 주말 오후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 중이었다.
고민 끝에 경찰에 고발을 하지만 가해자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한다.

가해자의 나이 29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친절이 과하셨네"라는 말을 효정 앞에서 내뱉는다.
피해자에 대한 배려나 범죄에 대한 분노 대신 다분히 나이차를 염두에 둔 비아냥이었다.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도 젊은 남자가 늙은 여자를 성폭행할 만한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여러 차례 기각된다.
심지어는 나이가 69세라 치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진술의 타당성마저 의심받기도 한다.
효정은 'CCTV에 성폭행 장면이 찍혔어도 성폭행당한 것을 증명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효정이 물었다.
"고소인이 젊은 여자였으면 그 사람이 구속되었을까요?"
불행은 '우연'일 수 있지만 치유와 위로까지 우연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변 지인이 효정에게 말한다.
"조심 좀 하시지."
('뭘 어떻게? ......')

지친 효정에게 또 다른 지인들도 별의미 없이, 혹은 덕담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툭툭 던진다.
'수영을 해서 그런지 몸매가 좋으세요', '다리가 20대처럼 예쁘세요'.
그 말은 범행가해자가 내뱉은 말과 같다.

효정은 힘들게, 그러나 단호히 말한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최소한의 정당성을 보장해주지 않는 제도보다 더 무섭고 질긴 것은 편견이라는 폭력이다.
그것은 자주 상식적 논리의 '지당함'으 자기 밖의 존재를 쉽게 타자화 한다.

질곡의 시간을 견디고 효정은 마침내 세상과 홀로 마주한다.
다른 사람이 써 놓았던 고발장 대신에 직접 자신이 손으로 '불편'하고 '불쾌'할 수도 있는 진실을 적어내려 간다.
그것에 대한 세상의 반향이 어떤 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저마다 생각하는 '만큼'일 것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보는 건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서늘하고 묵직하게 가슴에 와닿는 효정의 말이다.

영화는 한 여성의 끔찍한 불행에 관해서가 아니라 인간 존엄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편의점 직원이 나이든 남성에게 퍼붓는 악담은 효정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폭력과 본질에서는 같아 보인다.
"이 나라에 분리수거 해야 할 게 어디 쓰레기 뿐이겠냐!"
영화 제목이 『69세』인 것은 혹 뒤집어도 같아지는 6과 9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난 영어 제목 『AN OLD LADY』를 "AN OLD HUMAN BEING"으로 읽고 싶다.

늙음이 세월의 두께만큼 축적된 세상 달관의 지혜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찬란하던 원래의 색깔이 빠져나가고 남은 희여멀건한 무색무취의 헤진 옷감 또한 아니다.
그것은 젊음이 튼튼한 몸과 탱탱한 피부만으로 맹목적인 칭송의 대상일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여자건 남자건, 늙은이건 젊은이건, 생의 어느 지점이나 굴곡을 지나건,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일 이다.  
효정이 말했 듯 누구에게나 "인생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살에 효정이 손을 비추는 장면이 희망처럼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손목에 상처로 남아 있는 멍이 풀려나가길 기도해 본다.

"줄에 걸린 해진 양말 한짝
봄볕에 눈물도 찬란하여라"
- 영화 속 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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